Carpe Diem_

  
    새해 첫 꿈 이야기를 해보아야 겠다.

    꿈에서 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또는 3학년 여름방학 쯤이었던 것 같다. 많은 공부 거리와 방학 숙제에 치이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인 꿈이었다.) 방학 숙제는 서점에 있는 문제집 종류와 쓸만한 참고서 등을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하면서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꿈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난 대학교를 다녔었던 것 같았다. 분명히 대학교를 다녔는데, 난 왜 고등학교 공부를 또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망할 놈의 수능 준비를 또 해야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 방학 숙제를 하고 같이 서점에서 나오던 친구들에게 "이거 꿈인 거 같아!!"라고 말했다.

    여기서 '꿈인 거 같다'는 게 자면서 꾸는 그런 꿈 말고, 내가 대학생으로 살았던 세계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던가 아니면 구운몽에서처럼 내가 진짜로 살고 있긴 한데 허상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그런 느낌으로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 상현이가 늘 짓곤 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거 진짜 꿈일지도 모른다. 한 번 잘 생각해봐라." 고 말하였다. 상현이가 그렇게 말해줘서 일말의 희망이 생겼던 것 같다. 꿈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여전히 난 절망스러웠다. 또 이렇게 한 번 더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낙담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보다도 한 번 살았던 인생을 또 살아야 한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평소에도 그런가? 인생을 또 살면 힘들 것 같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오면서 친구들이랑 시덥잖은 잡담을 하고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난 너무 기분이 안 좋고 이 인생이 꿈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울먹울먹거리며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엄마한테 갔다. 엄마한테 지금 이게 꿈인 것 같고 분명히 난 대학에 붙었는데 이렇게 또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으엉, 으엉.

    그랬더니 엄마는 고개를 돌려 온화한 미소로 날 쳐다보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랬구나. 한 번 잘 생각해봐. 진짜 꿈일지도 모르잖아. 한 번 잘 생각해봐." 그래도 난 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날 다독이며 또 말했다.
 
    "그 큰 형은 이제 군대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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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엄마가 말한 '그 큰 형'이란 경열이 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내가 처음 학교 기숙사에 이사할 때 날 도와주었던 선배들 중에 경열이 형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후에도 간간이 소식을 묻곤 했다. 나이도 많은데 학교에 남아있으면서 (내가 전해준 소식을 들어서) 운동을 한다는 걸 알고, 다른 선배, 동기들과는 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엄마가 그렇게 물어보는 순간, 난 경열이 형을 떠올리면서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잠에서 깬 것이다. 잠에서 깰 때 우리 엄마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아는 듯 모르는 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꿈의 여운이 남아있어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잠에서 깨고 나니, 난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꿈속에서 처럼 그때로 돌아간다면? 으...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분명히 꿈속의 난 (수능이야 어찌됐건) 또 한 번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순간은 지나간 과거도 아니고, 흘러올 미래도 아닌 것 같다. 가끔은 몇달 전의 언제로 돌아가면 내가 이런 이런 것들을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ㅡ 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 꿈을 꾸고 나니 그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 게다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괴로워할지 알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난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ㅡ. 사실 매일 투덜투덜하고 있어도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 또 올 거라고 쉽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소중한 지금이다.

    새해 첫날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하늘에 감사한다. (꿈을 꿀 때는 너무 괴로웠지만.) 하루하루를 정말 감사히 여기면서 올 한해도 즐겁게 보내야 겠다.

    Carpe Diem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