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비스켓통'에 해당되는 글 11

  1. 2009.02.13 비오는 날 8
  2. 2009.01.26 H2, 박노해, 구미, 여행. 6
  3. 2009.01.09 그리니치 천문대의 오래된 거짓말 6
  4. 2009.01.01 Carpe Diem_
  5. 2008.07.29 '같이 밥이나 먹자' ㅡ 그 약속의 기술 7

비오는 날









대나무와 하늬바람이 만나면 소낙비가 된다.

소나무와 비와 바람이 만나면 파도가 되고,

바람이 거세지면 파도가 바위에 부딪친다.

플라타너스에 내리쬐는 햇살과 산들바람은 연못 아랫 세상을 만든다.

우리가 신뢰하는 지각조차도 선입관에 갖혀있어,

들리는 대로 듣고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를 듣고 볼 때, 자연은 오묘히 아름답다.

더 많은 소리를 듣고 싶어진다.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 어떤 소리가 날까.

산타바바라와 안달루시아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

아, 여행 고파라.






 
    비가 내리고 밖은 어둡고, 몸은 아픈데 학교는 조용해서 역설적으로 마음은 고취되는 오늘같은 날에 들을 노래가 '아톰북' 밖에 없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축구왕 피구'님 블로그에서 처음 추천을 받았을 때부터 듣고 싶었던 음악이었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좀 미지근했다. 그럴 만 한 게, 같이 주문해서 들었던 노래들이 My aunt mary, 검정치마와 같이 뿅뿅거리는 우주행 멜로디들을 자랑하는 놈들이었다. 아톰북은 미지근했지, 암.

    그런데 오늘은 내 엠피에서 들을 만한 노래가 아무리 뒤지고 뒤져도 아톰북 밖에 없더라. 그래서, 아톰북은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신나게 소리지르고 지지고 볶아대는 밴드에게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란 어떤 사람인지.

(아톰북 노래를 같이 들어보고 싶으나, 저작권법이 무서우므로 패스. 듣고 싶은 사람은 컨택트 미.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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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박노해, 구미, 여행.


1




시합은 몇 번이고 뒤집어진다.
그리고 설령 졌다해도 시합은 하나만이 아니야.
이제부터 수많은 시합을 싸워나가지 않으면 안돼.

연애만이 아니야.
일, 병, 인간관계..
싸워야할 상대도 여러 가지야.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하고, 울기도하고, 웃기도하고,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거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연전 연승으로 죽을때까지 웃기만 하는
그런 인생을 바라나...

- 아다치 미츠루, H2 12권 중에. 


2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박 노 해



돌아보면

내 인생은 실패투성이


이제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겠다고

조용히 울며 다짐하다가


아니야

지금의 난

실패로 만들어진 나인데

실패한 꿈을 밀어 여기까지 왔는데 나에게 실패보다 더 무서운건

의미없는 성공이고

익숙한 것에 머무름이고 실패가 두려워 도사리는 것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지지않는다.

성공했지만 의미 없는 것들이 있고

비록 실패했지만 더 의미있는 것도 있다.

누군가는 의미있는 실패라도 하며 쓰러져야만

그 쓰라림을 딛고 넘어 새날은 온다.


이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고

준비에 실패함으로

실패를 준비하지 말고

실패를 정직하게 성찰하며

늘 새로운 실패를 하자.



3


    난 얼마나 이기고 싶어했는지, 이기려는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패배와 실패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패배와 실패는 정확히 따져보면 다른 뜻이지만 삶에서는 같은 의미를 지닌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패배한 것이 바로 실패이기 때문에.) 박노해의 시를 보며 가슴 깊이 반성해본다.

    저 시를 본 뒤에 난 친구들을 만났고, (시에서 이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반 농담삼아 '뭐든지 져주겠다'며 나섰다. 그렇게 한참 시간을 보내보니, 져주는 게 이렇게 기쁜 일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주장이 관철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 즐거웠는데, 내가 먼저 져주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계속 얘기를 하면서 반성할 부분이 있었는데, 난 '모든 걸 져주겠다'는 마인드로 말하면서도 툭하면 이기려고 했던 것. 그러다가도 '아, 내가 이러면 안되지'라는 마음에 말을 접곤 했다.

    '의미없는 성공'과 '익숙한 것에 머무름이고 실패에 도사리는 것'. 내 삶을 되살펴보면 '의미없는 성공'에 만족하기 위해 얼마나 몸을 사렸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큰 실패없이 지금껏 인생을 살아온 게 만족스러운 점 혹은 일종의 자랑거리였지만, 그런 태도 자체가 나의 미래를 발목잡아 온 듯 하다. '이건 돈이 없어서 안돼. 혹시나 지원이 안되면 안되잖아?', '이건 재능이 없어서 안돼. 욕먹기 싫잖아.', '이건 실패 가능성이 너무 커. 안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걸 해야지.'

    그래서 저 시를 읽고 조금씩 내 삶을 바꿔가고 있다. 까짓거 계획대로 안되고, 퇴짜 좀 맞고, 좀 떨어지면 어때. H2에서 나오듯이 연전연승도 안될 일이지만, 또 그렇다고 인생에 연전연패도 없거든. 인생은 초등학교 때처럼 100점을 맞지 못하면 뭔가 마음이 찝찝한 받아쓰기같은 게 아니니까. 10점을 맞아도 나 스스로 만족하면, 그게 바로 인생이니까. 모 기업의 CF에서 나오는 훈이처럼, 엄마한테 5개 틀린 시험지를 내밀면서도 "나 잘했지?"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4


    친구를 보러 구미에 갔다. 정말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갔는데, 하루가 지나 그 다음날 집으로 가며 생각해보니 정말 '멋진 여행'이었다. 처음부터 '여행'이라 단정짓지 않았지만 '여행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느낌이랄까. 덕분에 생소한 곳에서 나를 낯설게 만들 수 있었다. 알기 어려웠던 '나'를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죽어라 걷고 혹은 굉장한 속보로 걷고(ㅋㅋ), 구미 여기저기의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뉴-뉴욕의 전망에 조금 놀랐다가 친구의 아픔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새어나오는 햇살과 눈내리는 금오산에 경외감을 느끼며, 금오산 비 앞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사진을 찍을 수 없음에 조금 안타까워 했지만 폰카에 친구들 사진은 하나 남아있고, 구미 사람들의 이상한 사상을 체험하고, 박정희의 거룩한 흔적들을 엿보았고(ㅋㅋ), 오랜만에 기차 바깥의 풍경을 즐겼고, 약을 먹지 않아도 아프지 않았고, 엄마 보고싶고. (ㅋㅋ)

    귀차니즘과 게으른 내 성격 탓에 여행을 조금 밖에 다니지 못했는데, 이제는 여행을 좀 다녀야겠다. 사진을 잘 찍는 법도 좀 배워야 할 것 같고 평소에 걸어다니는 습관을 몸에 들여야겠다. 꼭 해외가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우리나라 곳곳이 너무 궁금해졌다. 올초의 약속처럼 사람을 더 사랑해야겠고 혼자서 가기로 계획했던 여행들은 취소하고 좀 더 사람냄새 나는 여행을 다니고프다. 

    내일은 몇 년 만에 가족 여행. 영덕으로 간다. 이히.


5

    이제 진짜 새해다. 아직 음력으로 안지났다고 새해가 아니라는 안일한 합리화를 할 수도 없다. 빼도 박도 못하게 새 해가 다가왔으니, 나도 새롭게 태어나야겠지. 새로운 실패를 해야겠지.

    이 블로그를 들러주신 분들도 다들 새해복 많이 받으시길 바랄께요. 부디 '희망'만은 잃지 마시어 지옥같은 이곳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한 해가 되시길. 

  
May the for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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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천문대의 오래된 거짓말

 



"하움~ 분명히 난 방금 잠든 것 같은 기분인데, 벌써 아침이야?"
"일어나."
"벌써 8시간이 지났다구?"
"일어나."
"뭐야, 이거 말도 안돼!! 어ㅔㅁㄹ어ㅑㅐㅁ어푸페ㅐ뱌ㅓ걎댜걷베뎁ㄱㄷ, 으앙"


    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10분 정도 잔 것 같은데 몇 시간이 지났다니. 당신이 잠든 동안 누가 탁상시계의 시침을 돌려놓은 걸까? 집에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다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당신을 음해하려는 누군가가 시침을 돌려놓았을 테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당신은 다시 단잠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에 휴대폰, 컴퓨터는 생활 필수품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세계 표준 시계가 작동된다. 눈깜짝할 사이에 밤은 지났고 휴대폰 액정에는 "AM" 이라는 글자가 얄밉게 웃고있다. 힘겹게 준비를 한 뒤 직장이나 학교에 가면 '시간'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주위 사람 전부의 탁상 시계가 망가지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그 컴퓨터와 휴대폰 속의 '세계 표준 시계' 밖에 없다! 세계 표준 시계의 기준은 바로 그리니치 평균시. 영어로는 그뤼니취 민 타임, GMT. 바로 이 놈이 범인이었다.

    왜 그동안 '시간'이라는 체계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 사랑, 돈, 주님, 친구, 부모님, 믿음이라는 개념 그 자체" 등등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믿고 있는 것은 '시간'이다.

   바로 지금 시간이 멈춰버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늙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지금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도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도 없다. 특히 현대의 '도시남, 도시녀'들은 시간의 맹신자 들이다. 하루 종일 시분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간'이라는 기준에 절대적으로 따른다. 

   
"Time is Gold! oh nonono, Time is GOD!!" 



    여튼 그렇다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도대체 뭔 짓이 벌어지길래 우리의 시간 체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천문대 관리자가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 시간을 조정하고는 혼자 킥킥대다가 대나무 숲에 가서 '세계의 시간은 전부 다 거짓말이야'를 외치는 걸까? 아니면 천문대에서 일하는 소년에게 좋아하는 소녀가 생겨서 그녀를 만나지 않을 때에는 몰래 시간을 빨리 가게 하고, 그녀와 데이트 할 때는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케쥴러 사업자가 그리니치 천문대 측에 거액의 로비를 해서 스케쥴러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서는 하루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가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면제 사업자와 수면 의학 관계자가 합동 로비를 벌여서 밤에는 시간이 미치도록 빨리 가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란 원래 항상 일정하지 않은 체계인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망상이란 말인가?!!!!
 
    (..사실 그렇다.)

   여튼 그러면 한 번 그리니치 천문대와 GMT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 분명히 그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래 내용은 위키 백과에서 '그리니치 천문대' '협정 세계시' 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를 참조했다.)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는 1675년세워진 영국천문대이며, 세워질 당시의 이름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였다고 한다. (무려 300년이 넘는 기간동안 뻥을 쳐왔다니!) 영국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그리니치 천문대를 위치 측정의 기준으로 삼아 왔고, 경도의 기준이 되는 본초 자오선은 1851년에 정해져서 1884년에 국제 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자, 이야기가 지루해지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역시 얘네는 사기꾼이었다!!! (농으로 하는 말이니, 그리니치 천문대 측은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지 마시길.)

    당시 그리니치 천문대에 위치하던 본초 자오선은 폐기되고, 현재는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새로운 본초 자오선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게다가 GMT 역시 1954년 이후에는 다른 천문대의 관측을 토대로 정해졌으며, 현재는 '협정 세계시'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아직 협정 세계시를 GMT라는 용어로도 쓴다는 사실!! 그리고 원래 그리니치 천문대는 케임브리지로 옮겼고, 현재 그리니치에 번듯이 세워진 천문대는 런던 해사 박물관의 일부로 새로 세워진 건물이라는 사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움하하. 거짓말한 종목이 뭐든지 간에, 어쨌든 그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긴, 1600년대에 만들어진 천문대로 아직 세계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면, 우리 나라에선 그거 무시하고 첨성대로 측정해도 할 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협정 세계시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분명히 그것말고도 아직 거짓말이 남아있을 것 같다. 분명, 시간은 잘못 흐르고 있을 테다!

    우선 협정 세계시란 약자로 UTC인데, 이 약자는 영어가 아니다. 협정 세계시를 약자로 하면 영어로는 CUT, 불어로는 TUC인데 서로 자기 것을 쓰자고 주장하다가 합의를 본 부분이다. 협정 세계시는 1972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제 표준시로서,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가 정한 세슘 원자의 진동수에 의거한 초의 길이가 그 기준이라고 한다. 

    자, 또 이야기가 지루해지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역시 얘네도 사기꾼이었다!!! 음하하.

    정 세계시는 그레고리력의 표기를 따라서 하루를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눈다. 즉 하루에는 24 x 60 x 60 해서 86400 초인데, 실제 태양시(실제로 태양이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는 86400초보다 조금 길기 때문에, 협정 세계시에서는 때때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의 마지막 분을 61초로 계산한다고 한다. 즉 23시 59분 59초 다음에 0시 0분 0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23시 59분 60초를 거쳐 0시 0분 0초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윤초(閏秒)라고 한다.

    역시 나는 한 해의 잉여된 1초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이 판명된 것이다. (뭐래?) 

    그런데 윤초가 정말 가끔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좀 더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막상 2008년도 윤초가 있던 해였고, 1972년부터 지금까지 총 24번의 윤초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윤초가 없는 해보다 있는 해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600년에 한번씩 1시간을 추가시키는 '윤시'를 만들자는 얘기조차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내년에 국제학술기구에서 이 안이 통과되면 윤초는 사라지고 윤시가 발생한단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태양시에 기초한 GMT가 UTC와 다른 시간 체계를 갖게 되어, 실상 의미없는 시간 체계가 된다고 한다! 영국은 GMT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군이 없어 폐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위 내용은 세계 일보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기의 시간'>
이라는 기사에서 발견했다!)




    뭐 어쨌든 나의 탐정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다. 실제로 GMT(그리고 UTC는) 우리들이 모르게 시간을 속이고 있었고 난 2008년에 1초가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 1초를 낭비해버렸다. (ㅋㅋ) 그리니치 천문대 역시 이제는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는 '관광 자원'이었으며, 조만간 GMT라는 용어는 역사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란 것도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이었으며 권력의 영향을 받는 현실의 산물이었다. 처음 GMT가 세계시가 된 것도 당시 대영제국의 헤게모니 덕분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UTC에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 역시 과학의 발달과 아울러 영국의 위상 하락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끌려다닐 필요도 없다.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느낀 1초는 하루만큼 길었고,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며 보낸 하루는 1초보다도 짧았다. 그렇게도 시간은 상대적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린 그 8시간의 단잠도 내 몸과 정신에는 하루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을 테다. 힘겨운 하루와 '나 자신'을 화해시키느라 그렇게도 시간은 빨리 흘렀나 보다. 



    덧) 사실은 평소에 그리니치 천문대에 대한 의심이 들어서, 이것을 다빈치 코드같은 묘한 추리 소설 혹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거짓말에 얽힌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난 역시 글쟁이가 아니라서 그럴 엄두는 못 내겠다.

    덧2) 그래도 600년마다 한 시간씩 발생하는 '윤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머리 속에 나래나래 펼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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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_

  
    새해 첫 꿈 이야기를 해보아야 겠다.

    꿈에서 난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또는 3학년 여름방학 쯤이었던 것 같다. 많은 공부 거리와 방학 숙제에 치이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인 꿈이었다.) 방학 숙제는 서점에 있는 문제집 종류와 쓸만한 참고서 등을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하면서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꿈속에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난 대학교를 다녔었던 것 같았다. 분명히 대학교를 다녔는데, 난 왜 고등학교 공부를 또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망할 놈의 수능 준비를 또 해야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서, 방학 숙제를 하고 같이 서점에서 나오던 친구들에게 "이거 꿈인 거 같아!!"라고 말했다.

    여기서 '꿈인 거 같다'는 게 자면서 꾸는 그런 꿈 말고, 내가 대학생으로 살았던 세계와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살고 있다던가 아니면 구운몽에서처럼 내가 진짜로 살고 있긴 한데 허상의 세계를 살고 있다는, 그런 느낌으로 한 말이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들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 상현이가 늘 짓곤 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이거 진짜 꿈일지도 모른다. 한 번 잘 생각해봐라." 고 말하였다. 상현이가 그렇게 말해줘서 일말의 희망이 생겼던 것 같다. 꿈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하지만 여전히 난 절망스러웠다. 또 이렇게 한 번 더 힘든 시기를 거쳐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 낙담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보다도 한 번 살았던 인생을 또 살아야 한다는 거 자체가 마음에 안들었던 것 같다. 평소에도 그런가? 인생을 또 살면 힘들 것 같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오면서 친구들이랑 시덥잖은 잡담을 하고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도 난 너무 기분이 안 좋고 이 인생이 꿈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래서 울먹울먹거리며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엄마한테 갔다. 엄마한테 지금 이게 꿈인 것 같고 분명히 난 대학에 붙었는데 이렇게 또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난 펑펑 울기 시작했다. 으엉, 으엉.

    그랬더니 엄마는 고개를 돌려 온화한 미소로 날 쳐다보며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랬구나. 한 번 잘 생각해봐. 진짜 꿈일지도 모르잖아. 한 번 잘 생각해봐." 그래도 난 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엄마가 날 다독이며 또 말했다.
 
    "그 큰 형은 이제 군대 갔나?"

-

    그리고 난 잠에서 깰 수 있었다. 엄마가 말한 '그 큰 형'이란 경열이 형을 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엄마는 내가 처음 학교 기숙사에 이사할 때 날 도와주었던 선배들 중에 경열이 형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후에도 간간이 소식을 묻곤 했다. 나이도 많은데 학교에 남아있으면서 (내가 전해준 소식을 들어서) 운동을 한다는 걸 알고, 다른 선배, 동기들과는 좀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엄마가 그렇게 물어보는 순간, 난 경열이 형을 떠올리면서 내가 대학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잠에서 깬 것이다. 잠에서 깰 때 우리 엄마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아는 듯 모르는 듯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꿈의 여운이 남아있어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잠에서 깨고 나니, 난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꿈속에서 처럼 그때로 돌아간다면? 으...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분명히 꿈속의 난 (수능이야 어찌됐건) 또 한 번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순간은 지나간 과거도 아니고, 흘러올 미래도 아닌 것 같다. 가끔은 몇달 전의 언제로 돌아가면 내가 이런 이런 것들을 더 잘할 수 있었을텐데 ㅡ 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 꿈을 꾸고 나니 그게 얼마나 헛된 생각인지, 게다가 그렇게 된다면 내가 얼마나 괴로워할지 알게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난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ㅡ. 사실 매일 투덜투덜하고 있어도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 앞으로 또 올 거라고 쉽게 말하지 못할 정도로, 소중한 지금이다.

    새해 첫날 이런 꿈을 꿀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하늘에 감사한다. (꿈을 꿀 때는 너무 괴로웠지만.) 하루하루를 정말 감사히 여기면서 올 한해도 즐겁게 보내야 겠다.

    Carpe Diem_!



'같이 밥이나 먹자' ㅡ 그 약속의 기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누군가와 얼굴본 지는 오래 됐고 반가운 마음에 약속을 잡고 싶을 때 보통 '같이 밥이나 먹자'라는 말을 애용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 같다. 만남의 약속에 다른 많은 일들도 있을 수 있는데 왜 하필이면 '밥'일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1.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두'가 하는 일이다.
2. 일과 중 반드시 해야 할 행위이다.
3. 가장 본질적인 행위를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4. 행위 도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5. 보통 식사 약속은 1시간~2시간 정도로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경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이 걸리는 행위이다.
6.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경우 양쪽이 만남 그 자체로 즐거울 수 있다.
(7. 간혹 어떤 이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사를 혼자 하기 싫다는 이유로 밥 먹자는 약속을 잡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나 많은 이유가 있다. 별 생각없이 단순하게 하는 관습적인 행동 하나가 사실은 복잡하면서도 합리적인 이유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밥이나 먹자'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을까? 위의 조건들을 고려하며 하나씩 생각해봤는데, 신통치 않은 것도 있고 그럭저럭 쓸만한 것도 있다.


1. 같이 잠이나 자자


     잠을 자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이고 무조건 해야만 하는 행동이다. 또한 (수학여행, MT, 친구집 등지에서 경험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같이 잠자리에 누웠을 때의 시간과 공간은 일종의 '고해성사'을 위한 최적지이다. 서로 같이 누워있음으로써 본질적인 행위를 나누고 있기도 하며, 깜깜한 주위와 밤의 은밀한 분위기는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정말로 이런 약속을 잡는다면 내 집이나 상대방의 집에 저녁 혹은 밤부터 방문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잠자리에 들기 이전의 시간도 유의미하게 보낼 수 있다. 여려모로 괜찮은 대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이 둘 이상이 눕기에 너무 좁거나 이성 간의 약속일 경우에는 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이성이라도 공간 분할을 하고 잘 수 있겠지만, 그건 '같이 잠이나 자자'는 약속이 가지는 장점을 다 없애버리는 행동이다. 그래서 동성 친구 혹은 선/후배에게 자주 쓸만한 말이다. '야, 같이 잠이나 자자!'


2. 같이 돈이나 쓰자


    주위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는 경우이다. 같이 돈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위에서 언급한 조건 중 6번, 만남 그 자체로 즐거움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요즘같은 시대에 돈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거의 없다. 돈이 없어서 문제지.

    보통 친한 친구 간에 많이 발생하는 유형이고, 나아가서는 연인 사이의 데이트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데이트는 '밥이나 먹자'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돈이나 쓰자'이다. (사실 '돈이나 쓰자' 역시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 근본적인 목적으로 향하는 경우가 있으나, 19세 미만도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알아서 생각하자.)

    친한 친구나 연인과 같이 이런 약속을 하는 걸 보면 확실히 '돈'이라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가 맞긴 맞나보다. 얼굴만 대강 아는 사람이랑 같이 '돈이나 쓰자'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3. 같이 똥이나 누자


    요즘 똥 홀릭에 빠진 내가 고안해낸 방법이다. '밥이나 먹자'보다 훨씬 본질적인 행위를 나눈다는 점에서 임팩트가 아주 크다. '똥이나 누자'는 같이 뒷간에 앉아서 서로의 고통과 희열을 느끼며 서로가 가진 인간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유의미한 행위이다.

    하지만 단점이 너무 많다. 일단 장 트러블 혹은 복부 압박의 타이밍을 서로 맞추기가 어렵고, 행위 그 자체로서 '불쾌'하다. 더구나 성별이 다른 경우에 같은 장소에서 이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이루어지는 시간도 너무 짧다는 흠이 있다.

    그래도 '똥누는 약속'은 돈이 안 든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전부 다 돈이 필요한 행위였다면, 똥 누는 것은 깨끗하고 좋은 화장실을 물색하기만 하면 된다. 일종의 '반 자본주의적' 행태로서 자본주의에 심하게 반대하는 동지끼리 할 수 있는 상징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정말 친한 친구 간에도 가능하고, 이 행위가 한 번만 이루어지면 그 우애는 천금을 주고도 못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잡는 걸 아직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 가끔 TV에 보면 '똥'을 누는 건 아니고 '화장실'을 약속의 장소로 잡는 경우도 있긴 하다. 특히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껌 좀 씹던 형님들이...


4. 같이 숨이나 쉬자


    이 방법도 내가 고안했다. 약속 장소를 정한 뒤 그 곳에서 말도 하지 않고 여타의 다른 행위 없이 같이 '숨만' 쉬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아주 낭만적인 만남이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서로의 호흡 만을 느끼며, 그 호흡 속에서 서로의 눈빛과 마음과 생각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방법 역시 돈이 안 든다는 아주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우선 이런 약속을 잡기에는 서울의 공기가 탁하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정서가 불안하거나 다혈질인 사람이 아니라 차분한 성격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약속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행여나 이런 약속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 둘을 미친 것으로 알거나, 아니면 둘의 성별과 관계없이 연애하는 것으로 이해할테니 웬만하면 인적이 드문 곳에 약속을 잡는 게 좋다.

    '같이 숨이나 쉬자'라는 말이 너무 낭만적이라서 건네기에 부끄러우면, '같이 눈이나 깜빡이자'와 같이 재치있게 제안하는 방법도 있으니 잘 알아두자. 혹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낭만적으로 이런 약속을 하고 싶으면 '같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자'라는 방법도 있으니 이 말도 같이 알아두자.



    이외에도 '같이 몸이나 씻자', '같이 생각을 하자', '같이 언성을 높이자' 등과 같은 방법이 있으나, 그 실용성과 참신성 면에서 위의 네 가지 방법에 미칠 바 안된다.

    그래도 '같이 밥이나 먹자'가 제일 무난하고 괜찮다는 것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 혹시나 '같이 밥이나 먹자'는 말이 너무 식상하게 느껴지고 그와는 다른 색다른 약속을 잡아보고 싶은 사람들은 위의 네 가지 방법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춰 적절히 사용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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