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비스켓통'에 해당되는 글 11

  1. 2010.04.16 회고 1 5
  2. 2009.12.22 지금 만나러 갑니다. 4
  3. 2009.08.16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 17
  4. 2009.04.27 공유 4
  5. 2009.02.16 불안,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22

회고 1


  지금쯤 설악산 언저리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 내 동생, 남진이는 내 말을 죽어라고 안 듣는다. 라면 끓여달라는 부탁도 하기 어렵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먼저 끓여주지 않은 내 탓이기도 하다.) 그런 놈에게도 내 심부름이 중요한 일과이던, '형아, 형아' 하면서 날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긴 어릴 적에 나는 좋은 형이었다. 친구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그 집에서 푸짐히 대접할 피자, 치킨, 떡볶이, 김밥 등을 먹이려고 꼭 남진이를 데려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얼척없는 짓인데, 그 당시에는 나에게도, 생일 파티를 여는 친구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구차하게도 더 이상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좋은 형 노릇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남진이는 나의 아이스크림과 과자 사오기, 라면 끓이기, 비비탄 사오기, 전화받기, 물떠오기 등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다. 그런데 우리 형제가 점점 커가면서 남진이는 그 심부름에 100원, 300원, 500원 단위로 돈을 받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1000원을 주어도 어떠한 심부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마 내가 중2, 중3 정도 되었던 때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부탁을 하면 남진이가 즐거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내 친구들과 같이 축구하기, 키드캅이나 나홀로집에 같은 재밌는 비디오 빌려오기 따위의 부탁이었는데, '그 날'도 분명 남진이는 내 부탁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십몇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한 부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던 것 같다. 난 힘도 세지 않아 싸움도 좋아하지 않았고, 반에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역할을 부여받다 보니 싸울 일 자체도 거의 없었다. (반면 내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동년배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싸움꾼이었다. 태권도 조기 교육 덕택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의 몇 번의 파이트는 있었고, 다행히 강적들은 아니었다.

  그 파이트 상대 중에 상국이라고 샌님같은 외모에 좀 깝죽깝죽대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으나, 항상 공부 잘하는 척 하고 싶어하는 뭐 그런. 그런데 상국이는 항상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애들을 툭툭 건드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강한 자에 강하고, 약한 자에 약하다고 했던가.

  상국이와 나는 상당히 친한 편이었는데, 결국 어느 날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주먹을 나눴고, 나는 승자의 풍채로 의기양양하게 뒤돌아섰다. 나도 참, 힘에 약한 그런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싸워서 이겼다는 이유로, 상국이를 거의 동네북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상국이가 조금만 깝죽대도 '한 대 맞고 싶은 바람이 있는게냐'는 식의 리액션을 취하곤 했다.

  남진이에게 미안했던 그 날도 그런 식이었다. 남진이와 나는 우리 아파트 상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 슈퍼나 비디오 가게를 가던 길이었지 싶다. 사실 그냥 던져본 말이다. 내가 천재도 아니고 십몇년 전의 보통날에 어딜 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가 복도 저 끝에서 상국이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난다. 난 그리고 남진이에게 이죽대며 말했다.

 

  "전마 내 친구거든. 가서 한 대 때리고 온나, 흐흐흐. 걱정마라~ 내 친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한 대 치고 도망치면 된다. 아마 니가 달리기 더 빠를 껄?"

 

  태권도 조기 교육의 영향으로 내 동생은 달리기도 빠른 편이었다. 물론 세 학년이 높은 내 또래보다 빠를 순 없겠지만, 내 기억에 상국이는 달리기가 느린 편이었고, 한 대 때리고 도망치는 정도라면 남진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진이는 잽싸게 달려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내 말을 잘 듣던 그 당시의 남진이는 상국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내 계획대로라면 남진이가 한 대를 때리고 빠른 속도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태권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우리 남진이는 상국이의 정강이 근처에다가 쉴 새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로우킥'을 계속 날렸다.

  2학년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5학년에게는 귀여운 꼬마일 뿐이었다. 상국이는 로우킥을 날리는 남진이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된 상국이는 남진이에게 주먹을 날렸고, 울음이 많던 남진이는 발차기를 관두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형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며 남진이의 복수를 하고자, 바로 달려가서 상국이의 광대뼈에 주먹을 날렸고, 남진이처럼 펑펑 울던 상국이는 그 다음날 얼굴에 멍이 든 채로 학교에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진이에게도, 상국이에게도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이 일을 뭔가 자랑스럽게 기억했던 것 같다. 마치 아프간에 미사일 세례를 퍼붓고 자만감에 도취된 미국 같았다. 따지자면, 나의 권위로 동생을 파병하고,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으로 동생의 복수를 깔끔히 해주었다는, 나보다 약한 친구를 묵사발 내주었다는, 뭔가 자기 신화스러운 그런 기억이었다.

  반장과 모범상을 휩쓸던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의 깊숙한 내면에 이런 폭력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연구대상감이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폭력성의 학습은 또래집단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TV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내가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이 치고, 박고, 죽이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야생의 이야기들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동물 다큐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백과사전을 너무 좋아했었고, 어린이용 백과사전에서 공룡을 포함한 동물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레파토리였다. 백과사전에는 동물들의 몸길이, 체중, 서식지, 사진 등이 실려있었는데 그 중에서 나의 이목을 끄는 항목은 단연코  "속도"였다. 온갖 동물들의 속도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난 그것들을 줄줄이 외우고 다녔다. 그러한 내 버릇은 '가장 빠른 것'에 대한 동경을 낳았던 것 같다. 

  치타와 매는 각각 들짐승과 날짐승 넘버원이었다. 나는 치타가 나오는 프로그램과 책을 샅샅히 뒤지고 다녔다. 그 당시에는 백과사전 A와 백과사전 B와 TV프로그램 C와 TV프로그램 D에서 치타의 달리기 속도가 다 다르게 나와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90킬로설, 100킬로설, 110킬로설, 120킬로설, 90~110킬로설 등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숫자에 따라서 치타가 '모든 물체의 속력표'에서 몇 등 정도를 하는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치타가 110킬로 정도로 달린다고 치면 상당히 상위권이었는데, 90킬로 정도라고 치면 기차 따위의 허접스레기들에게 한참 밀렸던 기억이 난다. 아빠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던 어릴 적 나에게 90킬로와 110킬로의 차이는 국도와 고속도로 만큼 큰 것이었다.

  여튼 치타가 아프리카의 초원을 빠르게 내달리며 가젤 영양을 멋지게 사냥하는 모습은 내게 후레쉬맨이나 마스크맨보다 백배 멋있었다. 그런데 치타가 사냥하는 비디오와 프로그램을 맨날 보다보니, 지금 보면 그렇게나 귀여운 가젤 영양이, 그 때엔 아주 먹음직스러운 살코기 정도로 여겨지기 시작했었다. 가젤 영양을 놓쳐서 일주일째 배고파하는 치타에겐 동정심을 느끼고, 치타가 가젤 영양의 누런 배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포식하는 치타보다는 허탕치고 배 골골대는 치타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치타는 강하지 않았다.)

  아, 놀라지 않길 바란다. 이건 어린 최한진의 무서운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대다수 꼬마들의 무의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어른들은 모른다. 동물 비디오를 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어른들은 그저 귀여워 할 뿐이다. 물론, 어린 최한진 역시 그렇게 동물들의 생활 모습에 관심이 많은 착하고 귀여운 꼬마였고, 지금에 와서야 그 어린 최한진 내면의 욕망을 담담히 쓰고 있을 뿐이다.

  여튼 그랬다. 치타가 110킬로로 질주하고 매가 340킬로로 급하강할 때, 그리고 그 영웅들이 살을 뜯고 깃털을 발라낼 때, 나는 순진하게 웃으며 그 장면을 즐기곤 했었다. 남진이에게 상국이를 때리라고 시키던 11살의 나는 그렇게도 치타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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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언니네 님들하. ㅠㅠ ㅋㅋㅋㅋㅋ




콘서트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월요병 콘서트도 늦어서 놓쳤는데ㅠㅠ) 

갑자기 떠올라서 뒤져봤더니 이번 주말에 콘서트 한다는 언니네.

급하게 티켓 조회해봤더니, 아싸리 취소표 4장이 있네! ㅋㅋㅋㅋㅋ

광클X100 끝에 GET !!





아바타 아이맥스도 운좋게 좋은 자리에 예매했는데, 연말에 운이 쵸큼 따르는 듯. -_-b

이번 GMF에서도 압도적으로 최고였던 언니네. (전적으로 내 기준임. ㅋㅋ)

연말을 쌍콤하게 마무리하자!!! 으하하하핳암허ㅏㅇ머한ㅇ하앙ㅁ하ㅡ으흫아하하하하하ㅏ아ㅡ흐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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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

 
  "덥다... 더운데, 이거..! 더워... 정말 덥다... 더워~~ 덥다..!"
 
  록과 밴드를 다룬 BECK 이라는 애니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장면을 패러디해봤다. (사실 나의 진심이다.) BECK에서 주인공이 속한 밴드는 그레이트풀한 공연을 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그리고 눈이 폭폭 내리는 한겨울, 단짝 친구 겸 드러머와 마지막으로 노닥거리며 밤을 새고 헤어지는 길, 그를 배웅을 해주는 장면이다. (그러므로 "덥다, 더워"가 아니라 "춥다, 추워"로 바꿔서 읽어주면 정확하다.) 추위, 이별의 슬픔, 애잔함, 따뜻함, 눈길 위의 발자국 등이 차례로 떠오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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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되게 멋진 장면인데, 내가 추운 겨울과 거기서 느껴지는 따뜻함을 좋아해서 그런지 역시 여름은 패러디를 하든 뭘 하든 흥이 안난다. 난 여름이 너무 싫다. 나를 푹푹 누르는 더위와 등에 쩍쩍 달라붙는 티셔츠, 활개치는 벌레들과 유독 심해지는 악취,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와 잠못드는 열대야까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없다. 여름 노래들은 어찌 그렇게 다 복사판처럼 똑같아서, 시원하기는 개뿔 답답하게만 만드는지. 펜터치 같은 가을 바람을 맞으며 뮤즈와 넬을 즐기는 일은 나를 부풀게 하는데...

  뭐 어쨌든 여름이 싫다는 게 본론은 아니고, 그나마 이 여름을 견디게 해줄 에어컨과 나는 얼마 전 헤어졌다. BECK의 코유키가 사쿠와 이별한 것처럼...

  "잘 있어, 에어컨!"

  처음에는 아는 여자가 '올해는 에어컨을 쓰지 않고 여름을 나겠어~' 라는 다짐을 하길래 '이거구나!' 싶어서 나도 동참했다. 이유는 많다. 잘 살던 집이 반으로 딱 갈라져 이산 가족이 될지도 모를 수많은 북극곰도 살리고, 지구 구멍 뚫리는 것도 막고.. 호흡기가 안 좋아서 에어컨 들면 평소에도 콧물, 재채기가 심하기도 했고, 에어컨 청소하기도 귀찮고, 저번에 바퀴벌레가 에어컨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경악했기도 했고.. 뭐 어찌됐건 '덥다'는 점만 빼고는 긍정적이지 않을까 싶어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다.

  일단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사무실에 있으니 가장 더운 때는 방에 있지 않아 괜찮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켜고,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면.. 컴퓨터와 선풍기, 냉장고의 열기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덮쳐 온다. 게다가 내 방은 어찌나 바람이 안 통하는지.. 보통 7~8월의 한 여름에는 아침, 저녁으로 내 방이 바깥보다 더 덥다.  (얼마 전에 안 사실이지만 그럴 때는 오히려 창문을 닫으면 덜 덥다. -_-... 열기가 덜 들어와서.)
 
  그래도 평일 저녁은 어찌어찌 참겠는데, 주말은 장난 없다. 더워서 바깥에 나가기 싫다고 집 안에 있으면 정말 미칠 지경이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너무 더워서 한탄하고자.. ㅠㅠ) 에어컨을 청소하고 틀어버릴까 유혹에 빠진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다 에어컨이 팡팡 나오는 친구 방에 갔을 땐 극락이 따로 없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그리고 지옥이 있다면 내 방이 아닐까...




  그래도 어찌저찌 더위를 이길.. 아니 이기지는 못하고.. 좀 덜 더울 방법이 몇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선풍기를 두 개 이상 돌리는 방법이었다. 나도 친구 선풍기를 빌려서 두 개까지만 돌려봤지만 아마 세 개 쯤 돌아가면 에어컨이 없어도 '바람의 천국 하일성'을 구축할 듯 하다. 두 번째는 오늘 써본 건데 대야에 차가운 물을 받아서 발을 담그면, 아~주 괜찮은 효과를 발휘한다. '선풍기 2개 + 냉수대야' 조합이면 에어컨의 공백을 상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차가운 물로도 가능한 족욕기가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고..

  여튼 이래저래 신념과 현실 간에 갈등을 극복해가며, 이제 8월도 절반만 남았다. 8월만 잘 버티면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겠지?! 선구자 역할을 했던 아는 여자는 가족들의 방문으로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럼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내가 최초로 성공한 셈이다!! ㅋㅋ

  뭐 어찌됐든... 덥다... ㅠㅠ 에어컨 없이 효과적으로 더위를 물리칠 방법을 아시는 분들은 좀 가르쳐주시길. 굽신굽신..

  ps.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이 글을 쓰면서 하나 더 알았는데, 바로 겨울 이미지들을 보는 것!


              
         



                    무럭무럭 커, 북극곰들아. 그래야 콜라 CF도 들어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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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있다보면, 같이 오래 있다보면, 전해지는 '느낌'이란 게 있다.

  나 지금 몹시 슬픔, 기분이 좋아 날뛰겠음, 선물을 받아 황홀함(응?) ㅡ 뭐 이런 선명한 감정이 아니더라도, 혹은 '나 지금 그렇다'며 징징대지 않더라도, 그런 게 있다.

  그 사람과 있을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느낌. 시간 뒤에 변색된 벚꽃잎 같은, 낡은 일기장 같은, 빨강-노랑-파랑으로 표현되지 않는 노을빛 같은.

  시간처럼 쌓여 온 기억의 모래성은 또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면서 손 틈으로 빠져 나가겠지만, 아려오는 바로 그 때의 느낌은, 잊을 수 있을지...

  뭐 어쨌건, '좋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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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지지난주에 발행됐던 시사IN 73호에는 1월 20일에 열린 <시사IN> 신년 강좌 3탄 '정혜신에게 김어준의 위기의 심리를 묻다'의 요약된 내용이 실렸다. 정혜신과 김어준이라는 두 심리 상담가의 강의 및 대담이었다. 탐독하다보니 '아, 이게 심리 상담의 매력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를 주제로 한 정혜신 씨의 강의 내용을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거야.


    아래는 직접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이니, 한 번 읽어보시라.

    요즘 경제 전망이 어둡다는 뉴스가 자주 들리니까 마치 지금 시기에는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모두 똑같은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불안은 개인마다 다르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불안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진짜 자기 존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바가 뭔지 분명히 아는 것, 그것이 '자아 회복'이다.

(자아 회복의 걸림돌로 돈과 지식이나 학벌을 들고, 소득이 3.3배 오른다고 해서 아내가 남편을 3.3배 존경하지는 않을거란 얘기를 하면서)
 
    결국 은연중에 굉장히 어리석은 도식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 한다. 원시인이 홍수와 같은 자연 재앙을 이기기 위해 마을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서 '내년엔 이런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그 예다.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고 체계가 바로 '마술적 사고'다.

    좀 전에 말한 돈이나 학벌 같은 것 역시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마술적 사고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존재에게 다가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게 어쩌면 내 불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우선 '다 멈추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있는 그대로 내 불안을 한번 바라보자. 정말 뭐가 얼마나 불안한지, 일단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중략,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자들 중 일주일에 한병씩 지급되는 생수의 반을 세수에 이용한 사람들, 즉 자기 존재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를 함.)

    나는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면서 사는 게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불안할 때마다 어떤 마술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회피하려 한 적이 혹시 없었나, 그것 때문에 스스로 불안을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경험에 다가가지 못해서 계속 불안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보는 시간이었다면 좋겠다. 


1. 

    난 요즘 우리 사회에 '전염병'이 유행 중이라고 생각해왔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과 판단에 영향을 받는 그런 상태를 난 전염병이라고 여기곤 했다. 이를테면 어떤 친구가 취직을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때려치우고 토익 공부와 컴퓨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친구가 그런 공부들을 하기 시작한 건 자기 스스로 회의하고 고민하고 자기 자신을 설득시켜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위의 친구들 혹은 서로 접근은 할 수 있지만 면식은 없는 '간접적 관계자'(대표적으로 인터넷 상의 정보 교환자나 불특정 다수)들이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을 때, '나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다크 포스가 스멀스멀 자기에게 밀려 들어온다. 이 과정은 일종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과정이고, 결국 전염이 완료되면 자기 행위에 대해 주체적 판단을 배제시킨 '사고 정지' 상태에서 '타인을 모방'하는 데 급급해진다. 더구나,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모방'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스스로 판단했다고 믿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결국 그 행동은 타인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인데, 더 웃긴 사실은 그 '실체', '배후'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병적 모방 행위가 진정 존재한다면 그 모방 대상 역시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모방의 대상, 또 그 모방의 대상, 또 그 모방의 대상인 근본적인 '일자(一者)'는 누구인가? 누가 처음 그런 행위를 시작해서 전염되고 또 전염되는 것일까?

    그 대답을 위의 강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불확실한 공포와 불안', 바로 그것이 전염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개개인은 불확실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개의 '불안 해소가 가능해보이는 선택지' 중에서 사회의 다수가 선택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타인에게는 마술인 것이 내게는 연금술이 된다. 이런 마술적 사고는 사회에 급속도로 전염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배제한 채 '진정 나의 불안은 무엇이고, 이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판단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 

     이 기사를 읽고는 내 친구 중 한 명을 떠올렸다. 원래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항체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에 걸린 친구였다. 그래서 이 기사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고나서 2주 정도가 지난 어제가 되어서야 이 기사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친구의 '마술적 사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다보니 궁금해졌다. 나는 마술적 사고를 하지 않는가? 나는 불안이 없는가? 나의 불안은 뭘까? 등잔 밑이 어둡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 는 말처럼 난 다른 사람의 불안에 대해서만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내 스스로의 불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을 조금 유심히 읽는 사람들은 이미 내 불안을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진로'에 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시간을 빼앗겼다.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내 고민은 어떤 관찰과 경험에 의해 나 스스로 '난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판단이 자연스레 도출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저 '이제 급한데, 공익 복무 기간이 끝나면 복학인데, 이제 제대로 진로를 잡아서 뭘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달리고 있는데!' 따위의 불안감 속에서 이 불안감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학부 졸업 전에 책 5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목표도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니까 나도 토익학원 가야지'하는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목표는 학자가 되려면 학교에 있을 때 책을 1000권 이상 읽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과 공부하기에는 좀 늦은 게 아닌가 싶은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불안 해소 장치'에 불과했다. 자신이 진정 책을 많이 읽고 싶다면, 저런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좋은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을텐데. 단지 이런 사례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은 '계속되는 불안 작용과 그 해소를 위한 마술적 반작용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그래서 앞으로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걷는 카라를 본받아) 이 불안감과 당당하게 대면하기로 했다. 내가 계속 진로를 고민하는 건, 아직 진로의 답을 내릴 수 없을만큼 내 경험과 관찰과 신념이 부족한 탓이었다. 문제를 풀 능력이 안되는데, 문제를 풀고자 하는 건 '과욕'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진로에 대해서 너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우선은 '나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고자 하는 대로 살다보면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앞으로 갈 길이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이 또한 마술적 사고가 아닌가 의심되긴 하지만, 난 이미 내 안의 불안과 한 판 붙었다. 이건 불안이 만들어내는 마술이 아니야!)

    시사인에 소개된 강의에서는 '자기 대면의 실천 방안'으로서 'Here and Now' 개념을 소개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실행하라는 조언이다. 정혜신 씨에 의하면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심리적 에너지 소모를 계속해선 안 된다. 내게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욕구가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먼 훗날 내가 무엇이 될지 소모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일단 현재의 내 삶과 내 욕구와 내 바람에 충실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해보면서 세상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축적되면, 진정 내 앞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아시아와 남미를 여행해보고 싶은데, 공익 신분이니까 패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안에도 갈 곳은 많으니까. 일단 우리 나라의 산들을 하나 하나 만나보고 싶다. 이건 공익 신분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ok. 그리고 '난 꼭 대학원을 가야 해.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해' 이런 부담보다는, 자유롭게 다양한 책들을 읽고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미완성으로 끝난 밴드의 꿈도 다시 꾸고 싶다. 공익이 끝나면 여행을 갈텐데, 그 때를 위해서 돈도 좀 더 모아야 겠고.

    어제 내 과외생도 진로 고민을 많이 하던데. 아마도 이 땅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래도 고민의 긍정적 성과를 거둔 지금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서 있는 땅이 울퉁불퉁해보여도, 발 앞보다는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걸으라고.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자기 자신은 사랑하기에 너무 좋은 존재니까, 한 번 꼬옥 안아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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