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2


이사 준비가 끝났다. 


HIMYM의 바니가 이 광경을 봤으면 분명 "legen - wait for it -dary!!"를 외쳤을 거다. 오늘밤 일은 방을 옮기는 게 아니라 쓰레기장을 옮기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내가 어떤 집을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걸 또 다시 깨달았다. 유목민 처럼 월세와 전세를 오가며 몇 년마다 집을 새로고침 해주지 않으면 내 집은 그냥 폐가가 되고 말 것이다.


이사는 가진 것 중에 버릴 것을 다시 구분하는 일이다. 그래서 '집'이란 건 내가 가지고 싶은 걸 가지고 있을 수 있는 큰 호주머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뭘 버리질 못하는 나의 호주머니에는 온갖 물건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내 방에서는 상상을 해야 한다. 눈으로는 모든 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엄청나게 많은 물건들이 있었다. 


특히 예전 물건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2005년 학생수첩이라든지, 고등학교 명찰이라든지, 새내기 시절 짜로가 여성의 날 행사에 따라왔음을 포상하며 주었던 편지라든지, 예전 수업들의 필기 같은 것들이었다. 졸업 정국을 맞아 더 강하게 느끼는 사실인데, 확실히 나는 과거로 현재를 사는 사람인 것 같다. 좀 루져같은 어감이 있긴 하지만, 상관없다.


훈련소에 간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들도 있었다.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무슨무슨 훈련이 있을 것 같다, 좀 힘들다, 그렇지만 난 괜찮다, 그럭저럭 버틸 수 있다, 여기는 좀 이상한 곳이다, 사회가 그립다, 너는 뭐 하며 사니. 


그렇지만 하나하나 애뜻한 맛이 있다. 그 당시 나에게 절대 말을 안 놓던 지노는 편지조차 경어체였다. 준용이는 진짜로 악필이다. 물론 훈련소에서 편지쓰는 게 그리 여유로운 일이 아님은 알지만, 진짜로 악필이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김기현은 "너와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너도 나랑 친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따위의 개소리를 지껄였다. 무려 김기현은 십반년지기인데 어이가 없다. 이런 십반년지기.


그리고 남진이 편지는 정말 따뜻했다. 앞에 인간들보다 편지를 훨씬 잘 쓴다. 그 편지들은 우리가 성인이 된 후에 나누었던 가장 긴 대화였다. 남진이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이사 준비를 하던 건데, 그 편지를 읽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결국, 이런 작은 물건 하나하나가 다들 소중해서, 간직하고 싶은 기억과 버려도 되는 기억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전부 다 상자 안에 꾹꾹 넣어서 테이프로 싸버렸다. 오히려 지금 버려야 할 물건들도 '이건 20년 뒤에 엄청난 과거의 물건이 될거야'라고 생각하며 다 넣어버렸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하며 후회하기도 했지만 노후 대비 한다 생각하니 편했다.


4년을 넘게 살았다. 그 4년 만큼 물건들이 쌓였다. 이 방에 이사 오던 날 좌충우돌 엉망진창이었지만, 많이 기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좋은 타이밍에 이사를 간다. 갈 수 있을 때이고 가고 싶은 때이고 가야만 하는 때인 것 같다. 


생각해보니, 어느 지친 퇴근길에 멍 때리고 걷다가 이 건물 앞에 와서 '하이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 방에서 보냈던 여느 날들처럼 계단에 주저앉아 계속 멍이나 때려야겠다. 가끔은 일부러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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