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ㅡ 짧고도 오래 기억될 그들의 기록

 


   「세계를 보는 새로운 창 W (이하 W)」를 마침내 읽었다. 꼭 보고 싶었는데 사자니 조금 아깝고 해서 도서관에서 대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빌려보았다. (왜 사기엔 아까웠는지, 그 이유는 커밍 순.)

    TV 프로그램을 활자물로 출판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다. 고등학교 때 '역사 스페셜' 시리즈를 통해서 그런 류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상당히 알찬 구성이었던 것 같다. 이후에는 EBS의 '지식채널 e' 시리즈를 모아 찍어낸 「지식e」시리즈를 읽었다. 이 책은 5분짜리 영상에 따뜻한 감성과 영상미를 담으려고 했던 TV 프로그램의 의도와 그 장점을 잘 소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책에서는 방송에서 소개되지 못한 관련 배경 지식도 소개되어서 유익하게 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W의 장점은 본래의 프로그램이 가지는 탁월함에 기인한다. W는 '지역에서 활동하나 세계적으로 사고하는' 세계시민사회적 마인드를 바탕에 깔고 세계 각국의 사회 현상들을 현장감있게 전달한다. (계속 쓰면서 단어들이 좀 어색한데, 사실 아르샤빈의 아스날 이적 문제때문에 잠을 잘 못자서 단어들이 조합도 안되고 생각도 안난다. ㅠ 그깟 공놀이 ㅠ) 그 내용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제작팀이 책 서두에서 밝히듯이 앉아서 책 뒤지고 인터넷 뒤져서 '~이러이러하다더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이든지 발로 뛰어서 직접 보고 들은 그대로를 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W의 내용들은 살아있다. 좀 더 관용적으로 표현하자면 생생하다. 여기서 각주달고 저기서 편집하고 이리저리 헤지고 터진 내용이 아니라 그 사회의 '팩트(fact)'를 사실적으로 전달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W의 장점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TV 프로그램의 영상에서 보여지는 생생한 현장감은 책에서 상당 부분 상실된다. 방송이나 다름없이 책에서도 생생한 사실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현장감의 전달에 있어서 TV프로그램에 훨씬 뒤떨어진다. 현장성을 주기 위하여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사진도 아니고 영상캡쳐도 아닌 무언가들은 오히려 독서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책을 읽다보면 어떤 내용의 실제 모습이 궁금해지는데 그 '무언가들'은 그런 호기심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무언가들'을 계속 보고 있으면 갈증에 콜라를 마신 것처럼 더 목이 타는 느낌이다. 또한 그 '무언가들'이 등장하는 빈도는 일반적인 책에 비해서 잦고 어떤 것들은 한 페이지를 다 잡아먹을만큼 크기도 커서, 활자를 읽는 진행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도 저도 아닌게 되어버린 셈인데, 내가 예전에 봤던 이런 류의 책들과 비교해보면 그 단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우선 '역사스페셜' 시리즈는 본래 영상보다는 텍스트(콘텐츠? '다루는 내용'에 정확한 대응이 되는 단어를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서 텍스트는 '영상 텍스트'를 포함한 창작물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으로 서술되는 내용만을 뜻한다.)에 비중이 큰 TV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책에서도 영상보다는 텍스트에 큰 비중을 두었다. 읽다보면 이 책이 원래 TV 프로그램이었다는 생각을 잊을 정도로 내용에 충실했다. 

    또한 '지식e' 시리즈는 책에서 텍스트 자체보다는 원래의 영상이 가지는 느낌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했다. 지식채널e에는 '이성'보다는 '감성'에 귀기울이는 내용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제작팀이 언급했듯이 '영상시'같은 느낌을 줄 수 있었다. 또한 한 챕터의 전반부에서는 방송의 영상을 절묘하게 책에 표현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내용과 관련된 배경지식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영상과 텍스트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한다. 이런 책들에 비하면 W는 TV 프로그램의 영상과 텍스트를 책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TV 프로그램의 텍스트를 더 보충해서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든지, 아니면 방송의 영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중점을 뒀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또한 W라는 책이 가지는 가치의 '일회성'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 W는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해외의 사회 현상들을 가장 발빠르게 전한 책이다. 때문에 W는 가장 시사적인 동시에 그만큼 일회적이다. 누군가가 2, 3년 뒤에 이 책을 처음 본다고 가정하면, W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느꼈던 것처럼 '책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대사회의 변화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2, 3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흐른다면 W가 전하는 현상들은 그 시의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W가 전하는 내용들을 다른 매체나 저작물에서 활용한다면, 2, 3년 뒤의 독자가 본 W는 여기저기서 들어본 내용들로 가득할 것이다. 

    따라서 W는 다른 일반 책들에 비해서, 심지어 TV 프로그램을 각색한 '역사 스페셜' 시리즈와 '지식e' 시리즈에 비해서도 수명이 짧은 것으로 보인다 . TV 프로그램이 계속 되는 동안 2편, 3편이 나와서 W의 손자뻘이 출판되더라도 그 '일회성'의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사지 않은 이유다. 두 번 볼 책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TV 프로그램을 또 보면 또 봤지.)

    하지만 그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W는 좋은 책이다. 1) 무거운 내용이지만 쉽게 읽히고 2) 따뜻한 마음을 기르게 하고 3) 사회적 고민의 시작점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W의 시사성에 한계가 있더라도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하여 더 고민하고 더 조사해본다면 그 문제의식은 일회성에서 탈피된다.

    결정적으로, 가깝고 먼 미래에 W에서 소개하는 사회 현상들의 외면적 양상은 바뀌어 있을지라도 내적인 갈등 구조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또한 그 갈등 구조는 또 다른 현상에서 재현될 것이다. 예를 들어 W에서 다뤘던 각 국의 도시 빈민 문제와 절대 빈곤 문제는 몇 십년 전에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해결이 요원한 문제이다. W에서 소개한 바로 그 나라가 아니라 그 옆 나라에서 또 벌어질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또한 이라크 난민 문제 역시 아빠 부시가 전쟁을 일으킬 당시에도 존재했을 것이며, 난민 사이의 계급 격차는 H.G.웰즈의 소설「타임머신」에서 묘사된 미래 세계를 연상시킨다. 해맑게 웃으며 고통을 모르는 지상의 인간과 힘겹게 노동하고 고통받는 지하의 인간. 1895년에 쓰여진 소설에서 묘사된 모습은 이라크 난민들의 모습, 그리고 더 크게는 전지구의 인간들이 겪고 있는 갈등과 흡사하다. 갈등 구조는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반복되고 재현되는 것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나니 마치 결론이, 내용은 좋은데 책에선 잘 전달하지는 못하니, 닥치고 본방이나 사수하라 - 이런 말인 것처럼 들린다. 맞다. (ㅋㅋ) 그래도 책보다는 TV 프로그램의 전달 효과가 더 커보이니 가급적이면 본방 혹은 재방 혹은 검은 경로의 무언가를 보면 좋겠고, 시간과 장소 등 여러 여건이 충족치 못하여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일독을 권해본다.




    덧) 이 책과 연관시켜 읽어볼 만한 책은 쉐일라 코로넬 外 지음의 「The News: 아시아를 읽는 결정적 사건9」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음의「르몽드 세계사: 우리가 해결해야 할 전지구적 이슈와 쟁점들」이 있다.

    '더 뉴스'는 9명의 아시아 기자들이 쓴 아시아의 중요한 9가지 사건들을 엮은 책이다. 지금은 MB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KBS TV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에서 소개된 바 있다. 우리는 국내의 문제 혹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의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이 책을 통해서 아시아의 저널리즘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르몽드 세계사'는 104개의 핵심 키워드를 추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지구적 문제를 심층적, 균형적으로 전달한다. 국제 문제에 대한 백과사전 혹은 어릴 적에 학교에서 줬던 '사회과 부도' 쯤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나의 키워드에 대하여 여러가지 표와 그림을 제시하여 설명한다. 여기 저기서 글을 쓰는 데 자료로서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 다만, 가격(정가 25,000원)이 조금 압박이다. 


    뭔가 설명이 틀에 박힌 것 같고 명확하지 못하다고? 나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ㅋㅋ) 지금 읽고 있는 가벼운 소설 하나만 읽고 나면, 이어서 볼 예정이다. 아마 다음 책 관련 포스팅은 W와 '더 뉴스'의 내용을 비교하여 써볼 것 같다. 그 글에서는 형식과 기술 방법을 주로 이야기하는 이 글과는 다르게 W의 내용에서 보이는 아쉬움을 좀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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