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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09 그리니치 천문대의 오래된 거짓말 6

그리니치 천문대의 오래된 거짓말

 



"하움~ 분명히 난 방금 잠든 것 같은 기분인데, 벌써 아침이야?"
"일어나."
"벌써 8시간이 지났다구?"
"일어나."
"뭐야, 이거 말도 안돼!! 어ㅔㅁㄹ어ㅑㅐㅁ어푸페ㅐ뱌ㅓ걎댜걷베뎁ㄱㄷ, 으앙"


    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법한 일이다. 10분 정도 잔 것 같은데 몇 시간이 지났다니. 당신이 잠든 동안 누가 탁상시계의 시침을 돌려놓은 걸까? 집에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다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분명히 당신을 음해하려는 누군가가 시침을 돌려놓았을 테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당신은 다시 단잠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에 휴대폰, 컴퓨터는 생활 필수품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세계 표준 시계가 작동된다. 눈깜짝할 사이에 밤은 지났고 휴대폰 액정에는 "AM" 이라는 글자가 얄밉게 웃고있다. 힘겹게 준비를 한 뒤 직장이나 학교에 가면 '시간'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주위 사람 전부의 탁상 시계가 망가지지 않은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바로 그 컴퓨터와 휴대폰 속의 '세계 표준 시계' 밖에 없다! 세계 표준 시계의 기준은 바로 그리니치 평균시. 영어로는 그뤼니취 민 타임, GMT. 바로 이 놈이 범인이었다.

    왜 그동안 '시간'이라는 체계 자체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세상에서 가장 믿을만한 게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 자신, 사랑, 돈, 주님, 친구, 부모님, 믿음이라는 개념 그 자체" 등등 자기 하고 싶은 말을 하겠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가장 믿고 있는 것은 '시간'이다.

   바로 지금 시간이 멈춰버릴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늙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지금으로부터 24시간이 지나도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는 사람도 없다. 특히 현대의 '도시남, 도시녀'들은 시간의 맹신자 들이다. 하루 종일 시분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간'이라는 기준에 절대적으로 따른다. 

   
"Time is Gold! oh nonono, Time is GOD!!" 



    여튼 그렇다면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도대체 뭔 짓이 벌어지길래 우리의 시간 체계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천문대 관리자가 일상의 무료함에 지쳐 시간을 조정하고는 혼자 킥킥대다가 대나무 숲에 가서 '세계의 시간은 전부 다 거짓말이야'를 외치는 걸까? 아니면 천문대에서 일하는 소년에게 좋아하는 소녀가 생겨서 그녀를 만나지 않을 때에는 몰래 시간을 빨리 가게 하고, 그녀와 데이트 할 때는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스케쥴러 사업자가 그리니치 천문대 측에 거액의 로비를 해서 스케쥴러로 시간을 관리하지 않고서는 하루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가게 하는 것일까? 아니면 수면제 사업자와 수면 의학 관계자가 합동 로비를 벌여서 밤에는 시간이 미치도록 빨리 가도록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이란 원래 항상 일정하지 않은 체계인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망상이란 말인가?!!!!
 
    (..사실 그렇다.)

   여튼 그러면 한 번 그리니치 천문대와 GMT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 분명히 그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아래 내용은 위키 백과에서 '그리니치 천문대' '협정 세계시' 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를 참조했다.)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는 1675년세워진 영국천문대이며, 세워질 당시의 이름은 왕립 그리니치 천문대(Royal Greenwich Observatory)였다고 한다. (무려 300년이 넘는 기간동안 뻥을 쳐왔다니!) 영국 천문학자들은 오랫동안 그리니치 천문대를 위치 측정의 기준으로 삼아 왔고, 경도의 기준이 되는 본초 자오선은 1851년에 정해져서 1884년에 국제 회의를 통과했다고 한다. 

    자, 이야기가 지루해지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역시 얘네는 사기꾼이었다!!! (농으로 하는 말이니, 그리니치 천문대 측은 명예 훼손죄로 고소하지 마시길.)

    당시 그리니치 천문대에 위치하던 본초 자오선은 폐기되고, 현재는 '평균 해수면'을 기준으로 하여 그곳에서 동쪽으로 100m 떨어진 곳에 새로운 본초 자오선으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게다가 GMT 역시 1954년 이후에는 다른 천문대의 관측을 토대로 정해졌으며, 현재는 '협정 세계시'로 대체되었다는 사실! 그런데도 아직 협정 세계시를 GMT라는 용어로도 쓴다는 사실!! 그리고 원래 그리니치 천문대는 케임브리지로 옮겼고, 현재 그리니치에 번듯이 세워진 천문대는 런던 해사 박물관의 일부로 새로 세워진 건물이라는 사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움하하. 거짓말한 종목이 뭐든지 간에, 어쨌든 그동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단 말이다.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긴, 1600년대에 만들어진 천문대로 아직 세계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면, 우리 나라에선 그거 무시하고 첨성대로 측정해도 할 말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협정 세계시에 대해서 더 알아보자. 분명히 그것말고도 아직 거짓말이 남아있을 것 같다. 분명, 시간은 잘못 흐르고 있을 테다!

    우선 협정 세계시란 약자로 UTC인데, 이 약자는 영어가 아니다. 협정 세계시를 약자로 하면 영어로는 CUT, 불어로는 TUC인데 서로 자기 것을 쓰자고 주장하다가 합의를 본 부분이다. 협정 세계시는 1972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국제 표준시로서, 1967년 국제도량형총회가 정한 세슘 원자의 진동수에 의거한 초의 길이가 그 기준이라고 한다. 

    자, 또 이야기가 지루해지니 본론으로 들어가자. 역시 얘네도 사기꾼이었다!!! 음하하.

    정 세계시는 그레고리력의 표기를 따라서 하루를 24시간, 1시간을 60분, 1분을 60초로 나눈다. 즉 하루에는 24 x 60 x 60 해서 86400 초인데, 실제 태양시(실제로 태양이 자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는 86400초보다 조금 길기 때문에, 협정 세계시에서는 때때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의 마지막 분을 61초로 계산한다고 한다. 즉 23시 59분 59초 다음에 0시 0분 0초가 되는 것이 아니라, 23시 59분 60초를 거쳐 0시 0분 0초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윤초(閏秒)라고 한다.

    역시 나는 한 해의 잉여된 1초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음이 판명된 것이다. (뭐래?) 

    그런데 윤초가 정말 가끔 발생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좀 더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는 큰 문제가 되고 있었다. 막상 2008년도 윤초가 있던 해였고, 1972년부터 지금까지 총 24번의 윤초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윤초가 없는 해보다 있는 해가 더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600년에 한번씩 1시간을 추가시키는 '윤시'를 만들자는 얘기조차 나온다고 한다.

   실제로 내년에 국제학술기구에서 이 안이 통과되면 윤초는 사라지고 윤시가 발생한단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태양시에 기초한 GMT가 UTC와 다른 시간 체계를 갖게 되어, 실상 의미없는 시간 체계가 된다고 한다! 영국은 GMT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우군이 없어 폐지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한다.

   (위 내용은 세계 일보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위기의 시간'>
이라는 기사에서 발견했다!)




    뭐 어쨌든 나의 탐정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다. 실제로 GMT(그리고 UTC는) 우리들이 모르게 시간을 속이고 있었고 난 2008년에 1초가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 1초를 낭비해버렸다. (ㅋㅋ) 그리니치 천문대 역시 이제는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하는 '관광 자원'이었으며, 조만간 GMT라는 용어는 역사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란 것도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기준이었으며 권력의 영향을 받는 현실의 산물이었다. 처음 GMT가 세계시가 된 것도 당시 대영제국의 헤게모니 덕분이었다면, 지금에 와서 UTC에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 역시 과학의 발달과 아울러 영국의 위상 하락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끌려다닐 필요도 없다. 그녀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느낀 1초는 하루만큼 길었고, 그녀와 첫 데이트를 하며 보낸 하루는 1초보다도 짧았다. 그렇게도 시간은 상대적이다.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린 그 8시간의 단잠도 내 몸과 정신에는 하루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을 테다. 힘겨운 하루와 '나 자신'을 화해시키느라 그렇게도 시간은 빨리 흘렀나 보다. 



    덧) 사실은 평소에 그리니치 천문대에 대한 의심이 들어서, 이것을 다빈치 코드같은 묘한 추리 소설 혹은 그리니치 천문대의 거짓말에 얽힌 연애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난 역시 글쟁이가 아니라서 그럴 엄두는 못 내겠다.

    덧2) 그래도 600년마다 한 시간씩 발생하는 '윤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머리 속에 나래나래 펼쳐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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