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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6 불안,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22

불안,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지지난주에 발행됐던 시사IN 73호에는 1월 20일에 열린 <시사IN> 신년 강좌 3탄 '정혜신에게 김어준의 위기의 심리를 묻다'의 요약된 내용이 실렸다. 정혜신과 김어준이라는 두 심리 상담가의 강의 및 대담이었다. 탐독하다보니 '아, 이게 심리 상담의 매력이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를 주제로 한 정혜신 씨의 강의 내용을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거야.


    아래는 직접 그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이니, 한 번 읽어보시라.

    요즘 경제 전망이 어둡다는 뉴스가 자주 들리니까 마치 지금 시기에는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모두 똑같은 불안감을 느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불안은 개인마다 다르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불안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마다 차이가 난다.

    사람은 있는 그대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있다. 그래서 사람이 진짜 자기 존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바가 뭔지 분명히 아는 것, 그것이 '자아 회복'이다.

(자아 회복의 걸림돌로 돈과 지식이나 학벌을 들고, 소득이 3.3배 오른다고 해서 아내가 남편을 3.3배 존경하지는 않을거란 얘기를 하면서)
 
    결국 은연중에 굉장히 어리석은 도식이 우리 안에서 작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마술적 사고'(magical thinking)라 한다. 원시인이 홍수와 같은 자연 재앙을 이기기 위해 마을 처녀를 제물로 바치면서 '내년엔 이런 재앙이 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는 것이 그 예다. 예측 불가능한 공포와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어떤 사고 체계가 바로 '마술적 사고'다.

    좀 전에 말한 돈이나 학벌 같은 것 역시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만든 마술적 사고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기 존재에게 다가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래서 우리가 공부를 하거나 학원을 다니는 게 어쩌면 내 불안을 회피할 목적이 아닌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우선 '다 멈추자'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다. 있는 그대로 내 불안을 한번 바라보자. 정말 뭐가 얼마나 불안한지, 일단 직면해야 한다. 그 과정 없이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중략, 그리고 아우슈비츠 수용자들 중 일주일에 한병씩 지급되는 생수의 반을 세수에 이용한 사람들, 즉 자기 존재를 의식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의 생존율이 훨씬 높았다는 이야기를 함.)

    나는 자기 존재를 인식하고 느끼면서 사는 게 그 어떤 행위보다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불안할 때마다 어떤 마술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회피하려 한 적이 혹시 없었나, 그것 때문에 스스로 불안을 털어버릴 수 있는 그런 경험에 다가가지 못해서 계속 불안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한 번쯤 가져보는 시간이었다면 좋겠다. 


1. 

    난 요즘 우리 사회에 '전염병'이 유행 중이라고 생각해왔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기준과 판단에 영향을 받는 그런 상태를 난 전염병이라고 여기곤 했다. 이를테면 어떤 친구가 취직을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때려치우고 토익 공부와 컴퓨터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친구가 그런 공부들을 하기 시작한 건 자기 스스로 회의하고 고민하고 자기 자신을 설득시켜 스스로 선택한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위의 친구들 혹은 서로 접근은 할 수 있지만 면식은 없는 '간접적 관계자'(대표적으로 인터넷 상의 정보 교환자나 불특정 다수)들이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을 때, '나도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다크 포스가 스멀스멀 자기에게 밀려 들어온다. 이 과정은 일종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과정이고, 결국 전염이 완료되면 자기 행위에 대해 주체적 판단을 배제시킨 '사고 정지' 상태에서 '타인을 모방'하는 데 급급해진다. 더구나,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모방'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스스로 판단했다고 믿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결국 그 행동은 타인을 '따라잡기 위한' 노력인데, 더 웃긴 사실은 그 '실체', '배후'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병적 모방 행위가 진정 존재한다면 그 모방 대상 역시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모방의 대상, 또 그 모방의 대상, 또 그 모방의 대상인 근본적인 '일자(一者)'는 누구인가? 누가 처음 그런 행위를 시작해서 전염되고 또 전염되는 것일까?

    그 대답을 위의 강의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불확실한 공포와 불안', 바로 그것이 전염병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개개인은 불확실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몇 개의 '불안 해소가 가능해보이는 선택지' 중에서 사회의 다수가 선택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타인에게는 마술인 것이 내게는 연금술이 된다. 이런 마술적 사고는 사회에 급속도로 전염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배제한 채 '진정 나의 불안은 무엇이고, 이 불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판단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2. 

     이 기사를 읽고는 내 친구 중 한 명을 떠올렸다. 원래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항체를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전염병에 걸린 친구였다. 그래서 이 기사를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고나서 2주 정도가 지난 어제가 되어서야 이 기사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리고는 친구의 '마술적 사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러다보니 궁금해졌다. 나는 마술적 사고를 하지 않는가? 나는 불안이 없는가? 나의 불안은 뭘까? 등잔 밑이 어둡고,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 는 말처럼 난 다른 사람의 불안에 대해서만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지, 내 스스로의 불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블로그의 글들을 조금 유심히 읽는 사람들은 이미 내 불안을 예측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난 '진로'에 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두고 오랫동안 시간을 빼앗겼다. 생각해보면 이 고민은 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내 고민은 어떤 관찰과 경험에 의해 나 스스로 '난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판단이 자연스레 도출되는 과정이 아니었다. 그저 '이제 급한데, 공익 복무 기간이 끝나면 복학인데, 이제 제대로 진로를 잡아서 뭘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벌써 달리고 있는데!' 따위의 불안감 속에서 이 불안감을 어떻게든 해소하려고 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예전에 학부 졸업 전에 책 5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목표도 내 스스로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니까 나도 토익학원 가야지'하는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목표는 학자가 되려면 학교에 있을 때 책을 1000권 이상 읽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과 공부하기에는 좀 늦은 게 아닌가 싶은 내 불안감이 만들어낸 '불안 해소 장치'에 불과했다. 자신이 진정 책을 많이 읽고 싶다면, 저런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좋은 책들을 많이 읽을 수 있을텐데. 단지 이런 사례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 인생은 '계속되는 불안 작용과 그 해소를 위한 마술적 반작용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그래서 앞으로는 (어디서든 당당하게 걷는 카라를 본받아) 이 불안감과 당당하게 대면하기로 했다. 내가 계속 진로를 고민하는 건, 아직 진로의 답을 내릴 수 없을만큼 내 경험과 관찰과 신념이 부족한 탓이었다. 문제를 풀 능력이 안되는데, 문제를 풀고자 하는 건 '과욕'이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진로에 대해서 너무 복잡하게 고민하지 말고, 우선은 '나의 삶'을 살아보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고자 하는 대로 살다보면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앞으로 갈 길이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을까. (이 또한 마술적 사고가 아닌가 의심되긴 하지만, 난 이미 내 안의 불안과 한 판 붙었다. 이건 불안이 만들어내는 마술이 아니야!)

    시사인에 소개된 강의에서는 '자기 대면의 실천 방안'으로서 'Here and Now' 개념을 소개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실행하라는 조언이다. 정혜신 씨에 의하면 "자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심리적 에너지 소모를 계속해선 안 된다. 내게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욕구가 무엇인지 금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먼 훗날 내가 무엇이 될지 소모적으로 고민하기 보다는, 일단 현재의 내 삶과 내 욕구와 내 바람에 충실하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해보면서 세상에 대한 관찰과 경험이 축적되면, 진정 내 앞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일단은 아시아와 남미를 여행해보고 싶은데, 공익 신분이니까 패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안에도 갈 곳은 많으니까. 일단 우리 나라의 산들을 하나 하나 만나보고 싶다. 이건 공익 신분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ok. 그리고 '난 꼭 대학원을 가야 해. 그래서 이런 책들을 읽어야 해' 이런 부담보다는, 자유롭게 다양한 책들을 읽고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미완성으로 끝난 밴드의 꿈도 다시 꾸고 싶다. 공익이 끝나면 여행을 갈텐데, 그 때를 위해서 돈도 좀 더 모아야 겠고.

    어제 내 과외생도 진로 고민을 많이 하던데. 아마도 이 땅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아직도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그래도 고민의 긍정적 성과를 거둔 지금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지금 서 있는 땅이 울퉁불퉁해보여도, 발 앞보다는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걸으라고.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자기 자신은 사랑하기에 너무 좋은 존재니까, 한 번 꼬옥 안아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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