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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16 회고 1 5

회고 1


  지금쯤 설악산 언저리 어딘가에서 자고 있을 내 동생, 남진이는 내 말을 죽어라고 안 듣는다. 라면 끓여달라는 부탁도 하기 어렵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먼저 끓여주지 않은 내 탓이기도 하다.) 그런 놈에게도 내 심부름이 중요한 일과이던, '형아, 형아' 하면서 날 따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긴 어릴 적에 나는 좋은 형이었다. 친구 생일 파티가 있는 날이면, 그 집에서 푸짐히 대접할 피자, 치킨, 떡볶이, 김밥 등을 먹이려고 꼭 남진이를 데려 가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얼척없는 짓인데, 그 당시에는 나에게도, 생일 파티를 여는 친구에게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었다.

  구차하게도 더 이상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도 좋은 형 노릇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남진이는 나의 아이스크림과 과자 사오기, 라면 끓이기, 비비탄 사오기, 전화받기, 물떠오기 등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다. 그런데 우리 형제가 점점 커가면서 남진이는 그 심부름에 100원, 300원, 500원 단위로 돈을 받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는 1000원을 주어도 어떠한 심부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아마 내가 중2, 중3 정도 되었던 때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부탁을 하면 남진이가 즐거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를테면 내 친구들과 같이 축구하기, 키드캅이나 나홀로집에 같은 재밌는 비디오 빌려오기 따위의 부탁이었는데, '그 날'도 분명 남진이는 내 부탁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십몇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한 부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던 것 같다. 난 힘도 세지 않아 싸움도 좋아하지 않았고, 반에서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역할을 부여받다 보니 싸울 일 자체도 거의 없었다. (반면 내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는 동년배에서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싸움꾼이었다. 태권도 조기 교육 덕택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억할 정도의 몇 번의 파이트는 있었고, 다행히 강적들은 아니었다.

  그 파이트 상대 중에 상국이라고 샌님같은 외모에 좀 깝죽깝죽대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으나, 항상 공부 잘하는 척 하고 싶어하는 뭐 그런. 그런데 상국이는 항상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애들을 툭툭 건드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강한 자에 강하고, 약한 자에 약하다고 했던가.

  상국이와 나는 상당히 친한 편이었는데, 결국 어느 날 기억도 나지 않는 사소한 이유로 주먹을 나눴고, 나는 승자의 풍채로 의기양양하게 뒤돌아섰다. 나도 참, 힘에 약한 그런 평범한 초등학생이었다. 싸워서 이겼다는 이유로, 상국이를 거의 동네북처럼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상국이가 조금만 깝죽대도 '한 대 맞고 싶은 바람이 있는게냐'는 식의 리액션을 취하곤 했다.

  남진이에게 미안했던 그 날도 그런 식이었다. 남진이와 나는 우리 아파트 상가 앞을 지나고 있었다. 어디 슈퍼나 비디오 가게를 가던 길이었지 싶다. 사실 그냥 던져본 말이다. 내가 천재도 아니고 십몇년 전의 보통날에 어딜 가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상가 복도 저 끝에서 상국이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난다. 난 그리고 남진이에게 이죽대며 말했다.

 

  "전마 내 친구거든. 가서 한 대 때리고 온나, 흐흐흐. 걱정마라~ 내 친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한 대 치고 도망치면 된다. 아마 니가 달리기 더 빠를 껄?"

 

  태권도 조기 교육의 영향으로 내 동생은 달리기도 빠른 편이었다. 물론 세 학년이 높은 내 또래보다 빠를 순 없겠지만, 내 기억에 상국이는 달리기가 느린 편이었고, 한 대 때리고 도망치는 정도라면 남진이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진이는 잽싸게 달려갔고,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봤다. 내 말을 잘 듣던 그 당시의 남진이는 상국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분명히 내 계획대로라면 남진이가 한 대를 때리고 빠른 속도로 도망쳤어야 했는데, 태권도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우리 남진이는 상국이의 정강이 근처에다가 쉴 새 없이 발차기를 날렸다.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로우킥'을 계속 날렸다.

  2학년이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5학년에게는 귀여운 꼬마일 뿐이었다. 상국이는 로우킥을 날리는 남진이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대충 상황 파악이 된 상국이는 남진이에게 주먹을 날렸고, 울음이 많던 남진이는 발차기를 관두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형으로서의 위엄을 보여주며 남진이의 복수를 하고자, 바로 달려가서 상국이의 광대뼈에 주먹을 날렸고, 남진이처럼 펑펑 울던 상국이는 그 다음날 얼굴에 멍이 든 채로 학교에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진이에게도, 상국이에게도 너무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의 나는 이 일을 뭔가 자랑스럽게 기억했던 것 같다. 마치 아프간에 미사일 세례를 퍼붓고 자만감에 도취된 미국 같았다. 따지자면, 나의 권위로 동생을 파병하고, 자랑스러운 형의 모습으로 동생의 복수를 깔끔히 해주었다는, 나보다 약한 친구를 묵사발 내주었다는, 뭔가 자기 신화스러운 그런 기억이었다.

  반장과 모범상을 휩쓸던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의 깊숙한 내면에 이런 폭력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연구대상감이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폭력성의 학습은 또래집단에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나의 경우에는 TV 프로그램의 영향이 컸다. 그런데 내가 영향을 받은 프로그램이 치고, 박고, 죽이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야생의 이야기들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동물 다큐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이전에는 백과사전을 너무 좋아했었고, 어린이용 백과사전에서 공룡을 포함한 동물의 이야기는 빠질 수 없는 레파토리였다. 백과사전에는 동물들의 몸길이, 체중, 서식지, 사진 등이 실려있었는데 그 중에서 나의 이목을 끄는 항목은 단연코  "속도"였다. 온갖 동물들의 속도는 나의 가장 큰 관심사였고, 난 그것들을 줄줄이 외우고 다녔다. 그러한 내 버릇은 '가장 빠른 것'에 대한 동경을 낳았던 것 같다. 

  치타와 매는 각각 들짐승과 날짐승 넘버원이었다. 나는 치타가 나오는 프로그램과 책을 샅샅히 뒤지고 다녔다. 그 당시에는 백과사전 A와 백과사전 B와 TV프로그램 C와 TV프로그램 D에서 치타의 달리기 속도가 다 다르게 나와서 의아했던 기억이 난다. 90킬로설, 100킬로설, 110킬로설, 120킬로설, 90~110킬로설 등이 있었는데, 이 문제는 나에게 매우 중요했다. 왜냐하면 그 숫자에 따라서 치타가 '모든 물체의 속력표'에서 몇 등 정도를 하는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에 치타가 110킬로 정도로 달린다고 치면 상당히 상위권이었는데, 90킬로 정도라고 치면 기차 따위의 허접스레기들에게 한참 밀렸던 기억이 난다. 아빠 차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던 어릴 적 나에게 90킬로와 110킬로의 차이는 국도와 고속도로 만큼 큰 것이었다.

  여튼 치타가 아프리카의 초원을 빠르게 내달리며 가젤 영양을 멋지게 사냥하는 모습은 내게 후레쉬맨이나 마스크맨보다 백배 멋있었다. 그런데 치타가 사냥하는 비디오와 프로그램을 맨날 보다보니, 지금 보면 그렇게나 귀여운 가젤 영양이, 그 때엔 아주 먹음직스러운 살코기 정도로 여겨지기 시작했었다. 가젤 영양을 놓쳐서 일주일째 배고파하는 치타에겐 동정심을 느끼고, 치타가 가젤 영양의 누런 배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며 희열과 성취감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포식하는 치타보다는 허탕치고 배 골골대는 치타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치타는 강하지 않았다.)

  아, 놀라지 않길 바란다. 이건 어린 최한진의 무서운 욕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실 대다수 꼬마들의 무의식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다. 어른들은 모른다. 동물 비디오를 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를 어른들은 그저 귀여워 할 뿐이다. 물론, 어린 최한진 역시 그렇게 동물들의 생활 모습에 관심이 많은 착하고 귀여운 꼬마였고, 지금에 와서야 그 어린 최한진 내면의 욕망을 담담히 쓰고 있을 뿐이다.

  여튼 그랬다. 치타가 110킬로로 질주하고 매가 340킬로로 급하강할 때, 그리고 그 영웅들이 살을 뜯고 깃털을 발라낼 때, 나는 순진하게 웃으며 그 장면을 즐기곤 했었다. 남진이에게 상국이를 때리라고 시키던 11살의 나는 그렇게도 치타를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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