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서방(美書房)'에 해당되는 글 2

  1. 2009.01.13 Periskop & 이승환 - Realistic. 6
  2. 2008.06.18 우석훈 - 고양이는 길들지 않는다. 2

Periskop & 이승환 - Realistic.

 
   보통 미서방의 글 제목에는 가져오는 글의 지은이와 제목을 적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외의 경우인데, 지은이가 두 명이고 제목은 내 마음대로 붙였다. 왜냐하면 하나로 엮어 읽을만한 두 글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두 글의 교집합은 글 제목대로 'Realistic'이다.

    'Realistic'하면 딱 무엇부터 떠오르는가. (1초, 2초, 3초.) 내 경우에는 체 게바라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내가 아주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인데, 단순히 멋있어보여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하여 스스로 생각하다보니 어떠한 결론이 도출되었고, 그 결론은 사실 이 문장과 맞닿아 있었다. <블로그의 처음에 서서> 라는 글에서 그 사고의 단편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두 글은 바로 체 게바라, 그리고 문제의 이 문장과 관련이 있다. 첫 번째 글은 이 문장의 '진위 여부'에 주목한다. 정말로 체 게바라는 저런 말을 했을까. 흡사 '역사 추적'이라는 다큐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그의 추리를 따라가보자. 그리고 두 번째 글은 이 문장의 뜻이 사회에서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다룬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ㅡ 라는 말은 현실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자'가 되자는 뜻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글에 포함되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라.

    (두 글이 다소 길고 복잡할 수 있으나, 꼼꼼이 정독하면 아주 재밌을 것이다. 미서방은 내 블로그에서 가장 아끼는 글방이므로, 차라리 글 읽기가 힘들 것 같으면 아예 스킵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꼼꼼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대강대강 읽는 건 사절!)


    일단 연이어서 한 번 읽어보고, 이어서 'Realistic'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첫 번째 글은 Periskop 님의 <체 게바라는 과연 리얼리스트가 되자고 했을까?> 이다.

 

홈지기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명랑함을 선보이는 블로거 이웃 가운데 이승환 님이 있다. 간만에 이승환 님의 블로그에 가봤더니 재미있는 글이 올라와있었다. 흔히들 열혈 이상주의에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정신차리라고 할 때 자주 쓰이는 두 인용문에 대한 촌평이었다.

여기서 두 번째, 체 게바라가 말했다는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에 대한 홈지기의 기억을 덧붙여보기로 하겠다. 공교롭게도 홈지기는 이 말에 두 번 큰 충격을 먹었다. 첫 번째는 불꽃같이 뜨거운 삶의 숭고함에 대한 충격이었고, 두 번째는 세상은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의 필요성에 대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체 게바라에 대해 사회적 관심도가 급상승한 것은 대략 2000년 경부터로 기억된다. 붉은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쓴 빨갱이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그였으니, 그에 대한 뒤늦은 관심이 결코 이상할 것도 없으리라. 2000년 실천문학사에서 장 코르미에(Jean Cormier)의 『체 게바라 평전 (Che Guevara)』이 번역-출간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반응은 예상 외로 뜨거웠었다. 인물 전기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것부터가 국내 출판계의 화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체 게바라'의 이름을 단 책들이 여러 권 쏟아지고, 2004년 개봉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Diarios de motocicleta)"와 함께 한 번 더 세간의 이슈가 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 파급력은 분명 상당했다. 심지어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스테디셀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Che Guevara

체 게바라와

Che Guevara: Biography

한국에서 유달리 히트친 체 게바라 평전

홈지기도 당시 체 게바라에 대해 궁금하던 차에 발간 소식을 듣고 재빨리 읽어나갔다. 이 산적같이 보이는 사내가 편히 먹고 살 수 있는 의사의 길을 버리고 혁명가로 헌신했다니! 안락한 일상에 뒤통수를 치는 듯한 감상은 이 책 맨 앞머리에 나오고, 그리고 행여 잊어먹을까봐 역자 후기 맨 마지막까지 댓구로 반복되는 말로 절정에 올랐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이 때가 첫 번째 충격이었다. 그 여파로 홈지기는 이 문구를 프린트하여 책상머리에 꽤 오랫동안 붙여놨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이 꽤나 있으시리라 짐작된다. 물론 홈지기는 그렇게 사상이나 의지가 투철(?)하지 못해서 저 종이는 꽤나 일찍 바래버리고 말았지만.

그렇게 바랜 종이에서 눈이 멀어진지도 몇 년이 지났을까. 3년 전쯤 어느날 홈지기는 그 문구를 보고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 저게 원어(에스파냐어)로는 뭘까? 홈지기는 2차 세계대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체득한 버릇이 하나 있다. '번역을 믿지 말고, 원어를 구해라.' 독일군이나 소련군에 대한 지식을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형태로 받아들이며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잘못 알게 되었는지 절절히 느낀 경험 때문이다. 저 멋진 말을 에스파냐어 원문으로 이해해야 뭔가 더 찡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문제는 처음부터 발생했다. 일단 『체 게바라 평전』 어디에도 저 말의 출전이 나오지 않는다. 그가 말했다고 두리뭉실하게만 나오지 어느 저작이나 연설에서 나오는 말인지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구글링과 문헌조사를 통해 저 말의 원문을 찾아 헤맬 수밖에. 홈지기는 에스파냐어를 잘 모르니 우선 영어부터 시작하는게 당연한 수순인데, 영어로 검색해도 일단 뭔가 정확하고 권위있는 소스가 잡히지 않았다. 대략 "Let's be realists, let's dream the impossible."이라고 쓰는 경우가 그래도 많은 것 같은데, 여기서도 이 말들이 실린 웹페이지나 신문기사, (심지어) 책 모두가 하나같이 출전이 나와있지 않았다. 영어권이라고 체 게바라에 대한 관심이 적지는 않을텐데 매우 이상한 대목이었다.

홈지기는 다음으로 realist와 impossible에 해당하는 에스파냐어, realistas와 imposible에 Che Guevara를 키워드로 엮어 다양한 검색을 해봤다. 보통 번역어보다 원어를 이용해 검색을 하다보면 그 결과는 균일해지는 경우가 보통이다. 원어일수록 사람들이 말 그대로 인용하기 마련이고, 번역을 거듭하면서 번역자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 변형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이 역시 수렴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Seamos realistas, pidamos lo imposible.,
Seamos realistas, exijamos lo imposible.,
……

리얼리스트가 되자는건 공통적인데, 그 다음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가 중구난방이다. '가슴'이나 '꿈'이란 대목도 변변히 나오지 않고 심지어 문법적으로 틀린 말도 있다. 체 게바라가 에스파냐어로 남긴 말이라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리가 만무하다. 어디서 다른 언어로 연설했거나 혹은 누군가가 전해듣고 다른 언어로 처음 세상에 알렸음이 분명했다.

그런 언어가 뭐가 있을까? 홈지기는 『체 게바라 평전』의 원어가 프랑스어라는 점에 착안하여 프랑스어로 조사의 초점을 옮겼다. 결과는 놀라웠다.

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

리얼리스트가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Voila! 프랑스어에서는 이 말로 대부분이 수렴하고 있었다. (간혹 demander 대신에 유의어인 exiger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저 프랑스어 문구는 무엇이란 말인가? 아주 일부에서는 저게 체 게바라가 한 말이라고 쓰고 있으나, 역시 그 가운데 명확한 출전을 밝히고 있는 자료는 하나도 없었다. 가장 균일한 원문을 쏟아내는 프랑스어 문장도 출전이 변변히 없다니?

결국 저 말의 쓰임새를 몇 날 동안 살펴본 끝에 홈지기가 알아낸 것은 이거다 — 저 말은 그저 1968년 5월 파리 학생시위 당시 등장한 시위 슬로건 중의 하나였다.

May 1968 in Paris

당시 드골 정권에 반대하여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던 무렵, 파리 시내 곳곳에는 어지러운 정치 낙서와 함께 많은 슬로건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었고, 학생 및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처음 이 말을 지어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대중은 저게 누군가 멋진 명사의 말인 것처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오버랩된 인물의 하나가 '체 게바라'였을 것이다. 아시다시피 1968년 당시 체 게바라는 프랑스에서 좌익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Socialism and Man in Cuba (El Socialismo y El Hombre en Cuba)』같은 체 게바라의 글들을 보면, 그는 사회주의 사실주의(socialist realism) 등을 언급하며 사회주의국가가 가질 수 있는 경직성에 대해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가 어디선가 저런 말을 남겼다는 풍설이 삽시간에 퍼졌고 많은 이들의 뇌리에 각인되지 않았을까. 홈지기는 이후 이 슬로건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에스파냐어로, 한국어로 등등 의역되어 오늘날처럼 떠돌게 되었으리라 추측한다.

(이 추측이 옳다면, 위의 문장 해석을 다르게 해야할 수도 있다. '리얼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현실적이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 뜻이라면 당대 프랑스 정국에서 오히려 정권 퇴진의 극단적 해결책을 밀고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 보더라도 체 게바라의 삶과 잘 어울릴 법한 간지나는 저 말이, 실은 무명씨가 만들어낸 시위 슬로건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발견. 이것이 홈지기에게는 두 번째 충격이었다. 세상에 곧이 곧대로 믿을건 역시 없구나라는 생각이 쭈뼛하게 온 몸을 휩쓸었다. 나 스스로가 사르트르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 칭송했다는 '체 게바라'의 이미지에 미혹되어 겉멋만을 탐닉했다는 자성이 밀려들었다. 아무리 열정이 세상을 휩쓸어도 냉정의 고삐는 놓지 말아야 하는 법인 것을.

이후로도 가끔 저 말을 검색해봤지만, 오늘날 적어도 책임 있는 프랑스 언론이나 기고문에서 저 "Soyez réalistes, demandez l’impossible!"를 인용하면서 '체 게바라의 말'이라고 하는걸 보지 못했다. 또한 Wikipedia의 자매 프로젝트인 Wikiquote를 보더라도 이 말은 68시위 당시 슬로건 페이지(영어판, 프랑스어판)에 아무런 원저자 명시 없이 있을 뿐이다. 반면 Wikiquote의 체 게바라 페이지(영어판, 프랑스어판, 에스파냐어판)에는 이런 말이 전혀 없다. 이런 면을 보더라도 홈지기는 현재로서는 체 게바라가 리얼리스트가 되자는, 그리고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저 말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물론 체 게바라가 저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홈지기의 추론이 100% 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독자분 중 누군가가 명확히 저 말이 체 게바라의 입에서 나왔다는 출전을 알려 주시면 오히려 속이 편할 것 같다. 그래주신다면 홈지기도 그간의 추론 과정을 삽질로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방문객 여러분들은 항상 캡콜님 말마따나 '백 투 더 소스'의 자세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해보는 습관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체질화시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마 평소에 체 게바라, 그리고 저 문장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은 이 글을 읽고 적잖이 놀랐을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놀라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어서 두 번째 글을 읽어보자. 

    두 번째 글은 이승환 님의 <체 게바라 두 번 죽이기> 이다.


아마도 요 근래 대학가에서 - 그것이 교수이든 학생이든 - 가장 유행하는 두 어구는 이게 아닐까 합니다.

1.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이고,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면 더 바보 - 칼 포퍼(?)

2.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 -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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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은 2번에 있으나 우선 1번부터 간단하게 평하겠습니다. 우선 (?)를 붙인 이유는 이 말이 굉장히 횡행하고 있는 데 반해 출처나 진위 여부를 분명히 밝힌 곳이 없다는 이유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꽤 많습니다. 꽤나 이 시대를 휩쓴 시애틀 추장의 편지는 추장이 쓴 게 아닙니다. 1970년대 서구에서 나온 말이죠. 그것도 가이아 이론이 등장한 이후에 등장한 것이니 완전 서구 이론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역시나 열심히 퍼지고 있는 빌 게이츠가 했다는 조언도 구라임을 들풀님이 이야기한 적 있죠. 이런 이유로 이 이야기를 칼 포퍼가 했는지 조금 의문이지만 우선 사실이라는 가정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우선 마르크스주의자, 막시스트라는 개념에 대해 포퍼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좀 더 곱씹어 볼 의미가 있습니다. 포퍼는 꽤나 엄밀한 과학을 추구하고자 했고 이 때문에 '반증'이라는 방법론을 내놓았습니다. 포퍼가 과학의 진보를 믿었는지는 좀 불투명하지만 여하튼 과학이 진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음은 분명했으며 (쓸데 없이 관심 많은 분은 쿤/포퍼 논쟁 참고) 이 때문에 비과학적인 토대 (검증 불가능) 를 가진 이데올로기를 배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과 막스를 깐 이유도 여기에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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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자매품 시장경제와 그 적들을 집필하신 공병호 선생


그러나 포퍼가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했을지언정 마르크스 자체에 대해서 반대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포퍼는 자신이 공격한 플라톤과 막스에 대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으로 이야기할만큼 존경을 표합니다. 그가 경계하는 주 대상은 'ism'이지 'Marx'가 아닙니다. 어떠한 사상이 엄밀하게 검토되기보다 교조적으로 흐르는 것은 계속해서 오류를 낳고 그것이 특히 설득력을 지녀 현실 사회에 영향을 미칠 경우 비극을 낳을 수 있음을 포퍼는 경고했던 것이죠. 여기서 마르크스 자신이 "그렇다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맹목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거리를 둔 사실을 떠올린다면 오히려 마르크스와 포퍼는 맞닿는 지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의 은퇴 인터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일정 정도 읽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포퍼가 했다는 말은 종종 모르는 사람도 있겠으나 이미 상품화되고 상품화되어 최고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한 체 게바라 선생이 내뱉은 말을 모르는 양반은 없을 겁니다. 유족은 그 상품화에 소송까지 걸며 고인의 삶에 반대되는 상품화에 맞서려 하고 있으나 최근은 아예 그의 죽음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을 정도죠. 그런데 이 말은 위 말보다 훨씬 괴상하게 해석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체 게바라가 어찌 돌아가셨습니까? 끝까지 가능성도 뭐만한 혁명 한 번 한답시고 깝죽대다가 총살로 이 세상과 굿바이 하셨죠. 그렇다면 '리얼리스트가 되어라'라는 그의 말과 그의 삶은 유리된 것일까요?

(주 : 채승병님이 이 발언도 체 게바라의 발언이 아니라는 좋은 글을 써 주셨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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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수령과 체 게바라는 매우 돈독한 사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주의자'라는 번역보다 더 자주 쓰이는 'realist'라는 표현은 사랑스러운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1. 실재론자 2. 사실주의자 3. 현실주의자, 이렇게 세 가지로 번역됩니다. 철학에서나 읊어 댈 실재론자는 제쳐둔다면 2번과 3번이 그 주된 쓰임새라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둘은 무지하게 대비되는 뜻입니다. 사실주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태도'를 의미하는 데 반해 현실주의는 '현실의 조건이나 상태를 인정하고 이에 따르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체 게바라의 삶과 성향을 볼 때 아마도 그의 발언은 전자, 즉 사실주의로의 리얼리즘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그저 현실주의의 리얼리즘으로 해석될 뿐입니다. 이 경우 두 해석은 완전히 다릅니다. 전자가 '불가능한 꿈을 꾸고 끊임없이 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라'고 해석된다면 후자는 '불가능한 꿈을 꾸되 현실에 순응하라'가 됩니다. 전자가 극도로 혁명적이고 진취적이라면 후자는 애초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주 : 호밀님의 지적에 따라 수정합니다. 제가 프레임 함정에 빠져 '현실주의'의 의미를 '현실순응주의'로 받아들인 것 같군요. 현실주의는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받아들임을 의미하고 여기에 대해 순응하는가, 저항하는가는 차후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체 게바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개혁, 전복하라는 의미로 사용한 반면 사람들은 현실에 순응하라고 받아들인다고 보아야겠지요.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체 게바라의 삶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이 말을 칭송하면서도 이상한 해석을 섞어 체 게바라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여하튼 잡설이 길었는데 저는 자본에 반대되는 사상이 자본에 흡수되는 거야 뭐 당연하다고 봅니다. 흡수건 나발이건 결국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에 메시지 자체가 알려질 수 없으니까요. 필요한 것은 그것을 영리하게 이용하는 능력이지, 이에 대한 거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 자체가 완전히 악용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가 재생산되는 과정이 자본의 힘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계속되는 위기 속에 '자발적 복종'이 자리잡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서라는 건 영 찝찝하군요.



 

 
   
(이야기 마무리에 앞서 이 두 글을 꼼꼼이 정독해준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우선 첫 번째 글에서는 사실주의적인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체 게바라의 격언이 역사적으로는 사실이 아니며, 프랑스 68 혁명 때 존재했던 슬로건을 바탕으로 프랑스 저자에 의해 삽입되고 한국 번역가에 의해 확대해석된 일종의 '신화'임을 밝히고 있다.
   
    이 글의 참신함과 명료함은 글을 정독하신 분이라면 다 공감하실 것 같다. 중요한 건 체 게바라의 저 문구가 창조된 '신화'라 할지라도 그것이 수용자에게 유의미한 것이었다면 그 또한 가치있다는 점, 그리고 실제로는 그 문장의 주인이 체 게바라가 아닌 68 혁명의 슬로건을 만든 아무개라 할지라도 그 역사적 의미와 시사성은 크다는 점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 와 같은 시대인식이 없었다면 과연 68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이 시대인식은 썩을 대로 썩어있던 프랑스 사회를 가늠케한다. '가능한 수준'의 요구로는 구세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프랑스 전역의 대학생은 짱돌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그러한 68혁명을 통해 프랑스 사회는 진일보 할 수 있었으며, 구세대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평준화된 국립 대학 제도 역시 68의 결과 가능했다. 현재 한국의 현실을 떠올려볼 때, 이 슬로건이 주는 의미는 체게바라의 격언 못지않게 크다.


    다음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인용되는 칼 포퍼의 격언이 사실무근 혹은 아전인수임을 밝히고 있다. 즉, 칼 포퍼의 격언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경고이지 결코 '마르크스'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나아가서 체 게바라의 격언 역시 아전인수 격으로 회자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realist'의 번역은 '사실주의' 혹은 '현실주의'인데 사람들은 오로지 '현실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현실주의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뜻하며, 인식 후의 반응에 따라 '순응적 현실주의'와 '개혁적 현실주의'로 나뉘는데, 사람들은 아전인수 격으로 '순응적 현실주의'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체 게바라의 격언을 인용하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아, 꿈은 가지긴 가지되 현실을 위해서는 접어둘 수 있는 거구나. 일단 현실을 인식하고 순응하는 게 중요한 거구나." 따위의. 하지만 그 격언의 참뜻은 절대 그러하지 않다. 이상과 꿈을 추구하더라도 철저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하며, 또한 이상과 꿈의 실현이 현실 인식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 격언의 내포된 참뜻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블로그 첫 글을 쓰면서 이 블로그 이름의 원형은 "From the Vanilla Sky to the Vanilla Sky, Through the gray reality" 라고 했던 까닭이다. 체 게바라의 격언은 '순응적 현실주의'가 아닌 '개혁적 현실주의' 혹은 '개혁적 사실주의'를 표방한다.


    지금 글을 쓰면서 폼도 엉망이 되고 글도 늘어지고 중언부언해서 '그냥 글만 퍼올 걸, 뭐하러 사족은 달고 있냐'라는 생각이 자꾸 들지만 어쨌든 이 두 글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한 단어는 바로 'realistic'이다. 두 글은 'realistic'을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realistic'한 방법으로 사고를 진행한다. 문(형식)과 질(내용)이 고르게 균형을 갖추어 공자가 무릎을 탁 치고 크게 칭찬할만한 글이다. 체게바라, 리얼리스트, 그리고 'realistic'에 관하여 '파격'을 선사한 두 글을 미서방에 추천한다.


    덧) 두 번째 글, 즉 이승환 님의 글과 관련하여, '사실주의와 현실주의의 구분' 문제에 대한 좋은 보충 의견으로 여겨지는 'intherye'님의 댓글을 첨부한다.


제가 보기엔- 사실주의와 현실주의가 서로 대비되는 비교 가능한 차원의 두 입장이라기보다는, 링크하신 곳에서도 드러나듯 쓰이는 곳이 다름(표현의 영역이냐 행동 및 사고가 기반하는 입장의 영역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으로 번역된 용어에 불과한 듯합니다.

사전에서 "그대로 인정" 운운한 것은 그 상태로 내버려두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기보다는, 이를 테면 풍차를 거인이 아니라 그저 풍차로 본다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따르려는 태도라는 얘기도 사전에는 없네요.)

따라서 "현실주의"를 주어진 현실을 그저 인정하고 따르려는 입장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꿈을 품고 주어진 현실을 크게 바꾸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이나 생각이 몽상 아닌 현실에 굳건히 기반해 있다면 얼마든지 현실주의자일 수 있습니다. (기타 들고 꿈꾸자는 노래 부르는 대신 총을 들고 싸운다던가.)

즉, 현실주의자가 되자라고 번역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가장 옳은 번역이겠네요. 리얼리스트보다 된장 향기가 좀 덜나서 아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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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새롭게 생긴 '미서방'에 대해서 조금 설명을 해야겠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오는 김현중 같은 미서방은 아니다. (-ㅅ-) 한자 뜻 그대로 '아름다운 글이 보관되는 방' 정도이다.

  어감이 좋은 다른 단어들도 있겠지만 굳이 이 단어로 한 건 내 유년기 웹 생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모 인터넷 카페에서 잘 쓴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 이름이 '미서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거기에 올라갈 정도의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이도 나이인 만큼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아침에 조용히 책을 읽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글을 써버렸는데 다음날 미서방에 보관될 수 있었다. 지금은 유명 작가가 된 사람이 당시 미서방지기였는데 그 글에 극찬을 해주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모른다. 지금 보면 별 거 아닌 글이었는데도.

  여튼 그 때의 기억을 살살 곰씹으며 이 방을 만들어봤다. 이 블로그 세계에는 좋은 글이 너무나도 많고, 나만 보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


  우선 첫 번째 글은 우석훈 씨의 글이다. 분량이 꽤 길텐데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보았으면 한다. 수필 한 편, 또는 단편 소설 한 편 정도 읽는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


출처는 우석훈 씨의 블로그 "임시연습장 by retired"(클릭)이다.





[옛날 글] 고양이는 길들지 않는다.


옛날 파일을 볼 일이 있어서 뒤지다가 우연히 찾아낸 글이다.

이게 원래 <아픈 아이들의 세대>의 에필로그였는데, 원래는 그보다 1년쯤 전에 습작하면서 썼던 글이다.
 
아파트가 싫었던 이유들을 찾아보면서, 이런 종류의 글들을 꽤 많이 썼었다. 습작 시절에 써봤던 수많은 글들 중 하나...

요즘 사람들은 습작을 잘 안하는 것 같다. 내 경험으로는, 습작을 3년 정도 하고나니, 글을 어떻게 시작하고 마무리해야 할지, 약간 감이 잡혔던 것 같다.

책 도 습작이 필요하고, 짧은 글도, 여운을 가지려면 습작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 평생 남을 단 한 권의 책, 아니면 짧더라도 강렬한 단 한 편의 글 - 예를 들면 에밀 졸라의 "J'accuse" 같은 - 을 위해서 평생 습작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상에 대한 스케치 혹은 크로키 같은 느낌이 드는 글들을 내가 아주 선호하는 것은, 습작 시절에 노트를 놓고, 길거리 풍경을 스케치하듯이 그려내는 연습을 아주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A4 1장에서 2장 정도로 노트에 상황을 스케치해보는 연습은, 약간 도움이 되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논문체 글쓰기에 익숙했던 시절, 어깨에 힘을 빼는데,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 에필로그. 고양이는 길들지 않는다 >

우리 집은 여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고, 나의 부모님들은 30년이 넘도록 같은 집에 살고 있고, 넓지는 않지만, 마당이 있다. 이 마당이 완전히 와일드 번치다.

개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웠고, 내가 한참 개구장이이던 시절, 학교앞에서 병아리도 사와서, 닭이 되도록 키웠다. 잠깐이지만, 악어도 키운 적이 있다. 금붕어도 키웠고, 하여간 이것저것 많이 키웠다.

병아리와 강아지에 대한 슬픈 얘기가 있다. 학교 앞에서 사온 병아리들과 메리라는 강아지를 같이 키웠는데, 사이가 좋았다. 내가 봄에 사온 병아리는 요즘 같은 병든 병아리가 아니라서 그랬는지, 하여간 꼬고댁하고 울만큼, 그러니까 가을까지 컸다.

강아지는 자기가 엄마라도 된 것처럼 이 병아리 두 마리를 먹이고 재우고, 자기 밥을 기꺼이 나누어주었다. 그러니까 병아리들은 내가 키운 게 아니라 사실은 메리라는 강아지가 키운 셈이다.

문제는 병아리가 조금씩 바뀌면서 어른 닭이 되어간 데서 생겼다. 어느 날 자기 친구 병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아지가 이제는 닭이 된 병아리를 덥썩 물어버렸다.

너는 누구야?

강아지의 이 철학적 질문에 병아리는 자기가 이미 다 큰 닭이라는 대답을 할 길이 없었다. 한 마리는 강아지에게 물린 상처가 이내 도져 죽었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다리에 빨간약을 바르고 한 달 정도를 그래도 친구처럼 지내다가, 또 다시 강아지가 던진 너는 누구야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피하다가 벽을 넘어 올랐다가 떨어져 죽었다. 우리 집은 언덕 위에 축대를 쌓아올린 집이기 때문에 앞 쪽 벽을 넘으면 바로 2층 낭떠러지다.

조그만 벽 정도는 날아오를 수 있던 이제 어른 닭이 된 병아리에게 ‘축대’라는 개념은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나보다.

사실 이미 다 큰 닭의 처리를 놓고 우리 식구들은 갑론을박 중이었다. 병아리를 사온 나는 잘 지낼 수 있다고 얘기했고, 아버지는 그냥 삶아먹자고 했다.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방법을 찾았을 것이지만, 그때 나는 그냥 초등학교 4학년, 그야말로 10살짜리 애였을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닭을 잡는 것과 같은 복잡한 일은 해본 적이 없는 그저 초등학교 선생님일 뿐이다. 우리가 어쩔까 하고 시간을 보내는 한 달 동안 이미 어른 닭이 된 병아리들은 두 마리 모두 죽었다.

동물들도 철학을 한다는 걸 그 때 알았다. 강아지는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누구야? 닭은 이 질문에 답했어야 한다. 하다 못해 '삐악삐악'이라도 했었어야 했다. 어쩌면 했는지도 모른다. 소리가 꼬고댁하고 나와서 그렇지. 강아지의 질문에 닭은 대답을 했어야만 하는 존재적 상황이었다.

닭을 키우는데 실패한 나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정말 내가 고양이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몇 년이나 지나서였다. 부모님들이 고양이는 재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양이는 똑똑하고 개는 멍청하다고 한다. 그렇지는 않다. 개는 때로 고민한다. 넌 누구야? 그러나 고양이에게 넌 누구야라는 질문은 없다. 내가 20년 동안 관찰한 바로는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복잡한 생각보다는 '먹는 거와 먹는 데가 나오는 거'로 세상을 인식한다.

개는 주인을 알아본다. 그러나 고양이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한다. 고양이가 인식하는 것은 이곳은 먹을 것을 주는 곳, 주인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는 사람, 그 정도의 인식을 할 수 있다.

고양이를 키우면 대가족을 각오해야 한다. 개는 담벼락을 넘어가지 못하지만, 고양이는 담벼락의 장벽 같은 건 장벽 측에도 속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삼 미터 쯤 되는 담벼락을 뛰어서 넘는 걸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답다. 그 도약이 아름답다. 내가 아는 고양이는 아름다운 존재이다. 생각도 아름다운지는 모르겠지만....

에피소드 1. 나 이뻐?

내가 처음 키운 고양이는 좋은 종자였다. 얼룩털을 가지고 있는데, 얼핏 보면 호랑이를 닮았다. 무척이나 예뻐했고, 그 직전에 죽은 강아지를 슬퍼하며, 고양이로 전공을 바꿔보았다.

고양이를 키우는 건 쉽다. 음식도 안 가린다. 다만 비린내가 나게 해주는 것이 요령이다. 남은 밥에 참치 캔의 국물을 조금 부어주거나, 하여간 비린내가 조금만 나게 해주면 고양이는 아무 군소리 없이 신나는 만찬을 벌인다.

내가 키웠던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 중에 처음의 이 놈은 그래도 애교가 있는 편이다.

고양이는 멸치 눈은 먹지 않는다. 닭뼈가 목에 걸려서 고생하는 강아지랑 달리, 고양이의 식사는 섬세하다. 제대로 된 멸치 같은걸 한 마리 주면 오물오물 먹는다. 나는 처음에 무척 귀엽게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눈을 골라내는 과정이다. 다 먹고는 멸치 눈을 퉤 하고 마당에 뱉는다... 성질머리 하고는... 고양이는 눈이 소화가 잘 안된다는 것을 아는가보다.

굶기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난 모질지 못해서 그런 실험은 해보지 못했다. 굶기면 눈을 먹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고양이는 멸치 눈은 먹지 않는다.

마른 오징어를 고양이에게 주면 반응이 없다. 이건 딱딱한 나무 같은 거야... 생선인데? 아니야... 비린내가 나지 않쟎아?

오징어를 고양이에게 먹이려면 물을 조금 바르면 된다. 음... 생선 맞아... 금방 정신을 놓으면서 허겁지겁 먹는다.

이 고양이가 그래도 매일 밥을 주는 나에게 교태를 떠는 순간이 있다... 나 이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출몰하는 쥐가 부모님을 설득해서 고양이를 들이게 된 동기인걸 알았던 것 같다.

하여간 영민한 고양이라서 그런지 쥐는 잘 잡는다. 우리 집의 쥐는 금방 없어졌다. 그러나 고양이는 계속해서 쥐를 잡아온다. 나중에는 꽤 먼 곳까지 원정을 간다는 걸, 동네 사람들이 부모님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문제는 나 이뻐하기 위해서 쥐를 잡았다는 걸 자꾸 보여주려는데서 생겨났다.

몸통은 먹고, 쥐 머리를 마당에 늘어놓는다. 어떨 때는 두 개, 어떨 때는 세 개...

고양이가 우리 식구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부모님이 보기 전에 잽싸게 나가서 마당의 쥐 머리를 치우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행여난 한 번이라도 본다면 고양이 따위는 당장 치우라고 할 것 같다.

고양이는 끊임없이 외친다.

나 이뻐?

전혀 예쁘지 않지만, 고양이는 열심히 먼 동네까지 가서 쥐를 잡아온다. 몇 년간 쥐를 잡아왔다.

그러나 사실 이 고양이는 예뻤다. 가만히 있어도 너무 예뻤지만, 끊임없이 나 이뻐 외치고 있다. 그래 너 예뻐... 예쁜 짓만 안하면...

난 그때 몰랐다. 이 예쁜 고양이가 새끼를 네 마리씩 낳고도 엄마 고양이로 우리 집에 붙어있던 것들은 끊임없이 물어오는 쥐 때문이었다는 것을...

에피소드 2. 나 밥 줘?

지금 우리 집에는 강아지 대신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도둑고양이였는데, 겨울에 떨고 있는게 불쌍해서 아버지가 밥을 몇 번 주니까 매일 왔단다.

두 노인네가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서 밥을 한다. 사실 그냥 사료를 줘도 되는데, 아직도 고양이 밥을 주기 위해서 사료를 산다면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죄악이라고 두 노인네는 철썩 같이 믿고 있다. 그래서 밥을 한다. 음... 나는 여기에 대해서 별 얘기 안한다.

정월에 집에 갔더니 어머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다.

글쎄, 도둑고양이를 그만큼 잘 해줬는데, 새끼를 낳더니 제일 예쁜 놈을 데리고 도망가버리드라고... 도둑고양이는 도둑고양이야... 옛날 고양이들은 안 그랬는데...

웃어 죽는 줄 알았다. 당연하다. 고양이는 새끼를 낳으면 어미는 도망가기 마련이다.

간단하다. 고양이의 인식 세계에서 '밥을 준다'는 개념은 없다. 그냥 그 시간에 규칙적으로 먹이가 생긴다라는 인식 밖에는 없다.

고양이는 보통 세 마리에서 네 마리 정도 새끼를 낳는데, 젖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어미 고양이는 계산을 시작한다. 고양이의 생태학이다.

자기가 먹던 먹이를 네 마리가 먹을 수 있을까? 고양이 먹이느라고 필요 없는 밥도 하는 우리집 두 노인네가 설마 새끼들 밥을 안 줄라고...

그러나 고양이는 개보다는 훨씬 야생에 가깝다... 그걸 이해시켜야 하는데, 어미 고양이에게 밥 줄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기가 매일 먹던 밥을 네 마리가 나누어 먹으면, 당연히 모자라지... 고양이에게는 주인 개념이 없다. 개는 가출하지 않는다. 주겠지... 주인인데... 불행히도 고양이에게는 주인 개념이 없다.

젖이 떨어질 때쯤 어미 고양이는 가출을 한다. 새끼니까 두 마리 정도는 먹을 수 있겠지... 가장 강한 놈을 데리고 고양이는 가출을 한다. 남은 두 마리를 살리기 위한 끔찍한 모성이다.

그래서 이 의리 없는 어미는 키워준 공도 모르고 도망갈 뿐더러, 제일 예쁜 놈을 데리고 나간다. 왜냐하면 어미가 보기에는 그 놈이 제일 튼실해서 사냥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쥐가 많이 있다면 어미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모자라면 사냥을 하면 되니까...

그러나 이제 서울에 쥐는 별로 없다. 우리 집에도 식구들이 줄면서 쥐도 줄었다... 두 노인네가 먹어야 얼마나 먹는다고, 쥐까지 키우겠는가.

그러니까 어미까지 키우고 싶다면, 새끼를 낳은 다음에 밥을 많이 줘야한다. 괜챦아... 너까지 키울 수 있어... 밥, 밥은 많이 있으니까 고민하지마...

물론 강아지를 키울 때에도 고민은 있다. 개는 새끼 낳을 때 누가 보면 새끼를 물어 죽인다... 슬픈 모정이다. 빼앗기거나 남한테 죽느니, 내가 안락사 시키는게 낫다... 이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고양이가 자기 생태계의 부양능력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에피소드 3. 오, 와일드 번치!

고양이는 정원이나 마당에서 키워야 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장면의 추억이 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바빴다. 아버지는 방통대를 다니느라고 바빴고, 어머니는 전국 교육위원에 임명되어, 소위 정치를 하느라고 바빴고, 나는 노느라고 바빴다. 동생들도 나름대로 노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 정원은 아무도 가꿀 사람이 없었다.

장마를 지나고 나니까 잡초가 내 허리만큼 올라왔다.

이 허리만큼 올라온 무성한 잡초들 사이로 고양이 여섯 마리들이 뛰어다닌다고 생각해봐라... 아름다왔다. 와일드 번치가 따로 없다. 현관문만 나서면 우리집은 사파리였다.

그때의 아름다왔던 기억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그 상황을 다시 구연하려면 정원이 있는 집에서, 손보지 않은 잡초덤불과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필요하다.

나는 어쩌면 그렇게 만들어진 '쟝글(!)'에서 자연을 그리워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 정원의 후박나무는 강서구에서 가장 키 큰 나무이다. 섣불리 집 공사한다거나 팔려고 하면 삼십년씩 된 나무들이 아깝다... 솔직히 아깝다...

우리 집보다 좋은 정원을 가진 부자 아저씨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귀찮아한다. 가장 야성적이며 길들지 않는 그 키우기 편한 고양이를 말이다...

에피소드 4. 인내...

내가 서울에 돌아온 이후이다. 잠깐 집에 살았다. 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지금은 도미 유학 중인 막내 동생이 고양이를 길렀다. 그 당시 막내는 한가했다. 전자 기타를 배운다고 기타 학원을 다니는 걸 제외하면 빈둥거리면서 집에서 먹는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안했다.

형, 고양이가 참새 잡는 거 알아?

몰라, 어떻게?

고양이가 가만히 있거든... 몇 시간쯤 가만히 있으면 새들이 고양이인걸 까먹나봐... 점점 가까이 오거든... 그러다 적당히 가까와지면 확 잡지...

잘 잡아?

꼭 잡는 건 아니고, 두 번에 한 번 정도 잡는데, 못 잡으면, 다시 가만히 있어... 하루에 한 두 마리 정도 잡나봐...

근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아?

봤거든...

멏 시간씩 참새를 잡기 위해 돌부처처럼 버티는 고양이도 대단한 놈이었지만, 그걸 며칠씩 지켜보고 있던 동생도 대단했다... 다들 정말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었나부다.

막내의 얘기는 이런 거다.

어느날 고양이가 참새를 먹고 있더란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단다.

인내... 사람들은 다들 너무 바쁘다. 참새를 잡는 고양이의 인내를 배우고, 소일거리로 남들 괴롭히기 보다는 방안에 틀어박혀서 긴긴 여름날을 참새 잡는 고양이를 구경하던 나의 막내 동생이나...

인내를 배울 필요가 있다. 잠시도 심심한 걸 참지 못해서 누군가 괴롭히려는 사람에게 고양이의 사냥을 구경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나도 막내를 따라서 고양이의 사냥을 보려고 했지만,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다가 지쳤다...

형, 오늘따라 참새들이 잘 안 속아주는데?


에피소드 5. 불쌍해!

나락이라는 일본말에 자주 사용되는 약간 어려운 말이 있다. 밑도 끝도 없는 구렁을 나락이라 한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멋있게 표현하지만, 그냥 우리들 용어로는 ‘죽겠슈’라고 하는 게 그런 거다.

나도 이런 나락에 떨어져본 적이 있다.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끝없이 떨어져만 간다.

살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이, 그냥 추락할 뿐이다... 높이 나는 새가 오래 떨어진다고 했나? 나락... 다시는 그런 나락에 떨어지는 경험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어려울 때 고양이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말 불쌍한 고양이에 대한 기억이 있다.

새벽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갔더니 고양이가 죽을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고양이 잡을 뻔 했다.

화장실 담을 타고 화장실 문을 멋지게 들어온 것까지 좋았는데, 화장실에는 창문 바로 밑에는 욕조가 있었다. 타일 욕조...

이 욕조에 그대로 다이빙한 거다. 물은 절반 정도 차있었는데, 천하의 고양이라도 타일 앞에서는 해볼 도리가 없이, 그렇게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가 욕조 안에서 허부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기진맥진한 고양이를 들고 물을 닦아주면서 눈물이 흘렀다.

고양이, 탈진해서, 소리도 내지 못한다. 불쌍해서 눈물이 흘렀다. 고양이를 껴앉고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밖에서 키우던 고양이지만, 그날은 이불을 덮어주고, 꼭 껴안고 같이 잤다. 온몸이 얼어 있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무서웠지만, 실제는 너무 불쌍했다...

나락으로 끊임없이 떨어지면서 욕조에 빠졌던 어린 시절의 고양이 생각이 났다.

누가 날 건져주지 않을까?

건져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나도 기력을 회복하고, 그리고 그냥, 별 거 아니었쟎아, 그냥 나락에서 걸어나왔다.

그러나 그 때의 고양이는 너무너무 불쌍했다. 고양이는 물을 제일 싫어한다.


에피소드 6. 방안의 기억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우다 보면, 새끼 때 귀엽다고 방안에서 키웠던 고양이와 귀찮아서 처음부터 밖에서 키운 고양이가 나뉘게 된다.

지금은 우리 집에도 에어콘이 있지만, 여름에는 언제나 고양이 때문에 말썽이다.

문을 열면, 어릴 때 방에서 지냈던 고양이들은 꼭 안방의 아랫목으로 쏜살같이 날아온다.

여기가 바로 집이야!

방안에서 지냈던 기억이 없는 고양이는 현관문이 열려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지만, 따뜻한 겨울날 아랫목을 경험한 고양이들은 몇 년이 지났어도 마음 속의 고향은 안방 아랫목이다.

그때부터 난리가 난다. 이미 커버린 고양이를 안방으로 들이기는 어렵다.

예전에 도망가던 장농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여간 귀신같이 기억해낸다.

그러나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어미 고양이는 장농 바닥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슬픈 목소리를 내면서 밖으로 끌려가지만, 언제나 고양이는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억하고, 고향을 노리고 있다.

나도 그렇게 기회만 기다리면서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 있는 것일까?

나에게도 그런 마음의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

에피소드 7. 고양이와 놀기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안해 본 장난은 별로 없다. 강아지를 데리고 응용할 수 있는 '다방구', '술레잡기'를 다 해본 것처럼, 고양이와 놀 수 있는, 상상할 수 있는 놀이는 다 해본 셈이다.

그 중에 가장 재밌는 놀이는 고양이에게 탁구공을 던져주는 일이다.

사실 고양이에게 탁구공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상당히 건방진 존재로 고양이 눈에는 보이나 보다.

쥐를 잡듯이 손톱을 세워서 탁구공을 덥쳐 보지만, 탁구공은 고양이 손에는 잡히지 않고, 탁 튀어서 저 멀리 가버린다.

그러면 고양이는 무안하다. 다시 탁구공을 노려본다. 1분 정도...

그리고 날렵하게 도약한다. 탁구공... 못된 놈이다. 그런 고양이의 노력을 무시하듯이 다시 튀어버린다.

탁구공이 쥐였으면... 아무리 쥐를 잘 잡는 고양이라도 탁구공을 잡기는 어렵다...

고양이는 하루 종일 탁구공과 전투하며 야성을 키운다. 고양이가 탁구공을 실눈을 뜨고 노려보는 건 유쾌한 즐거움이다.

쥐와 눈싸움을 하듯이 탁구공과도 눈싸움을 한다. 가끔은 튀어오르는 탁구공을 잡기 위해서 다른 손으로 탁구공을 쳐보기도 한다. 순간 응용동작이다. 테겐의 필살기인 연속 동작같은 걸 다섯 번에 한 번 꼴로 볼 수 있다...

그런 고양이의 끈질긴 탁구공과의 전투를 바라보면서, 내 눈빛은 살아있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고양이만도 못하게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사는 건 아닐까?


에피소드 8. 길들지 않는 고양이

고양이에게 주인 개념이 없다는 것은 개보다는 더 야성에 가깝다는 말이다. 늑대의 혈통에 가까운 개일수록 더욱 품종이 좋은 개라는 말이 있다. 진돗개는 일반개보다 늑대에 더욱 가깝다고 한다. 때로 생각한다. 그러면 늑대를 기르지 왜 개를 기르는 거야? 바보 같은 질문이다. 늑대는 사람도 먹이로 생각한다. 사람은 개를 먹이로 생각하지만...

아무리 오래 고양이를 길러도 고양이는 길드는 법이 없다. 조금 익숙해질 뿐이지만, 강아지처럼 이름을 불러서 오거나, 뭔가 훈련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멍순이'라고 불렀던 내가 키워본 가장 멍청한 강아지가 종이팩에 든 우유를 먹게 둘째 동생이 훈련시키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둘째 동생은 종이 팩을 열게 하는 것까지 훈련시키고 싶었지만, 그건 좀 무리였다. 어쨌든 멍숭이는 종이팩의 우유를 먹고, 팩을 찢어서 남은 우유를 핥아먹는 정도로까지는 되었다... 둘째 동생은 분무기를 가지고 훈련을 시켰다. 독한 놈이다. 그러나 그런 둘째도 고양이를 훈련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난 이 고양이의 야성이 좋다. 직장이나 구조는 사람을 순치시킨다. 길들인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바보로 만든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가 '지혜'롭게 새끼들을 위해서 떠나가듯이, 고양이는 야생을 간직하며 길들지 않는다.

지식인은 길들어져서는 안 된다.

한 조각씩 던져주는 고기조각에 길들어서 사는 강아지보다는 언제나 야성으로 남는 고양이에게 배워야 한다. 지식인들은 말이다...

성대를 끊고, 손발톱을 다 끊어도 고기조각만 때맞춰 던져주면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강아지를 바라보면서 나는 분노한다. 속으로부터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양이는 길드는 것을 거부한다. 나는 고양이가 좋다. 강아지 같이 살기보다는 다소 모자라고, 때론 불쌍한 고양이 편이 좋다.

에피소드 9. 나는 마당을 가지고 싶다...

언젠가 아이를 낳게 되면 난 한 뼘만큼이라도 마당을 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글자를 쓰게 되면 고양이 한 마리를 사주고 싶다.

때론 어떤 어른이나 선생님도 가르쳐줄 수 없는 것을 한 마리 짐승이 가르쳐 줄 때도 있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며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보다는, 설령 주인의 손을 본의 아니게 할퀴어 미움 받지만, 당당하게 사람과 같이 사는 고양이의 삶을 배우게 해주고 싶다.

도시는 아파트와 콘크리트로 사람들 길을 들인다.

지금 사람들은 대부분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 그 편이 편하고 돈도 될 거다.

그러나 그건 도시가 강아지로 주민들을 길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못사는 동네에서 그래도 한 뼘의 땅이라도 가지고, 그리고 흙내음을 맡고, 고양이도 키우고, 장마가 지면 잡초가 자기 키만큼씩 자라는 그런 마당을 나의 아이에게 주고 싶다.

내가 길들지 않고 살아온 것처럼 나의 아이도 길들이고 싶지 않다.

조기교육이나 과외 같은걸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는 자연과 우주를 호흡하면서, 별을 볼 수 있는 작은 마당을 주고 싶다.

마당이 있어서 고양이를 키운 것이 아니라,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서 마당을 갖는 거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의 슬픈 이야기다...

그러나 어느 선생님들보다도 나의 고양이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 주었다. 고양이는 결코 길들지 않는다.




-끝-



 우선 꽤 긴 분량의 이 글을 읽은 당신께 감사의 인사부터 전하고, 이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조금 말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거칠게 말해보자면,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이지만, 또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다 읽어보았다면 알 수 있듯이 이 글에는 우석훈 씨만의 삶이 녹아있다.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그 관찰된 대상에 대하여 이렇게 힘을 뺀 채 유유히 써내려가는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쓸 수 없는 글'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이 글은 '88만원 세대'의 저자이자 성공회대 교수로서 쓴 글이 아니라, 고양이와 수십년을 같이 살아온 '우석훈'이라는 개인이 쓴 글이다. 자신의 삶, 자신의 경험을 꾸준히 되묻고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또한 주위의 것도 품어 안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쓸 수 있는 종류의 글이다.

  난 아직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이렇게 세심하고 따뜻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아직 나에겐 없다. 그래서 이런 글을, 이런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우석훈 씨에게 큰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세상 만사 어찌 알겠는가. 내가 또 언제 어디서 이 세상을 담담히 크로키하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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