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2010.10.22
 16:50:51




 

느지막히 일어나서 이불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가, 이유없이 중학교 때 기억이 났다. 수업 중인데도 과학 선생님이 교실에 찾아와서는 과학실로 데려가곤 했었다. 나처럼 끌려온 친구들 몇몇을 두고 과학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우리는 온갖 수다를 떨며 그 특별한 자유시간을 만끽하곤 했다. 물론 실험대회는 뒷전이었다.


그러다보니 또 고 3 시절이 떠올랐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넓다란 1층 건물에 자습실이 있었고, 주말에도 그 곳에 공부하러 온 친구들이 많았다. 그리고 봄의 온기를 못 견디며 나풀나풀 졸고 있던 어느 일요일, 자습실 선생님이 커다란 창문들을 열어제끼며 '다 같이 대청소나 합시다' 했고, 그 창문들 너머로 자습실에 햇살이 가득찼었던 것 같다. 답답한 자습시간 중에 찾아온 그 햇살에 어찌나 신나게 온 바닥을 물칠했던지...


그리고 아련하게 대학교 새내기 시절이 떠올랐고, 니가 떠올랐다. 기숙사 삼거리에서 널 기다리던 내가 떠올랐고, 과제가 늦게 끝나서 미안하다며 웃는 니가 떠올랐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던 방학에 너의 고향을 찾아가던 기억이 났다. 생각보다 깔끔한 카페에서 창문 밖의 조용한 마을을 보던 기억이 났다.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또 기분이 쌈쌈해진 건 아무래도 어제 본 어느 여학생 때문일 것이다. 시험 공부를 하느라 중도에서 밤을 새고, 잠시 중전을 들렀었다. 6시 쯤이었던가? 중전 1층에는 나처럼 학교에서 밤을 새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강의 녹음 파일을 mp3 로 듣고 있는데...


저 앞자리 어딘가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여학생을 남학생이 깨우고 있었다. 시험이건 레폿이건 분명 밤새가며 힘들게 준비하고 있었을텐데, 조금만 더 자게 놔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빼곰히 들어서 남학생을 보더니 다시 엎드려 자는 여학생.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아마 그 때, 니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 여학생이 신고있던 하얀 캔버스화와 과제에 지쳐 잠든 어깨와 그 여린 모습에서, 아마 우리가 같이 지내던 그 시간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혼자 감상에 젖어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한참 뒤에서야, 아, 수업 파일 듣고 있었지, 사람 집중력이 이렇게 허술하다니까, 하며 다시 이어폰에 귀를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을 것이다.


새 신발을 샀다며, 새하얀 캔버스화를 신고 예쁘장하게 서 있던 너. 중도에서 같이 밤을 새다가 엎드려 자던 너, 그리고 일어난 니 볼에 찍혀있던 책 자국. 같이 광합성도 하고 공부도 하고 사진도 찍고 가끔은 서로의 무릎을 베개삼기도 했던 어느 벤치. 장난을 쳐도쳐도 웃기만 하는 니가 귀여워서 찍어뒀던 사진. 니가 사는 곳 근처 중학교에 앉아서 함께 봤던 빨간 하늘. 그 빨간 하늘만큼 널 사랑한다고 말하던 나의 그 날들.


난 이제 혼자서도 이렇게 밤새워 공부하고, 시험을 보고, 저녁에는 친구를 만나 쓸 데 없이 수다떨면서 짬뽕을 후루룩 먹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예능을 보며 깔깔거리다가 잠들기도 하지만, 학교를 훌쩍 떠나버린 너도 어딘가 불켜진 사무실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안 해도 되지만 해도 될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 예전 그때 좋아하던 예능을 찾아보며 잠들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왜 이럴까. 우리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을텐데.




-



그런 날이 있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스치는 감상들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울던 날.

아, 병신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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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알바 2013.05.31 17:47 address edit & delete reply

    마지막 문단이 너무 슬프다 ㅜ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