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비판의 가벼움



1


  고학번 MT다! 아싸, 신난다! 장소도 잡고, 장보는 경로도 짜야지~ 룰루룰루.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니, 생각보다 참여하는 인원은 적고, 그 인원만큼의 경비는 또 얼마나 메꿔야 할지.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선발대는 고작 다섯 명. 가는 길이 신나긴 하지만, 장보는 건 고역. 다섯이서 짐을 다 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크지만, 주어진 예산선을 떠올리며 소세지도, 고기 한 근도 집어들지 못하고...

  이러나 저러나 이왕 시작한 거 열심히 짐 들고 MT 장소로 도착했더니, 이어지는 친구의 불평 크리. 바로 앞에 그럭저럭 괜춘한 동네 마트 하나 있는데, 뭐하러 버스 한 번 더 타야 하는 대형 마트에 갔어야 했냐고.

  다른 MT에 비하면 가는 거리도, 짐을 든 거리도 짧았는데. 오는 길이 힘들었던 건 다섯 명이서 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지 딱히 경로가 멀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는데. 그래도 준비하는 애들끼리 같이 머리 맞대고 고심해서 고른 마트인데. 이 정도면 계획대로 무난하게 이루어진 편인데. 

  그래도 힘들다면 힘든거지... 내 잘못이야, 내 잘못이야...


2


  이번 시즌 중반, 아스톤 빌라에게 4위 자리를 빼앗기며 온갖 비판과 비난이 벵거와 그 아이들에게 쏟아졌던 때가 있었다. 아스날 팬 사이트인 '하이버리'의 분위기 역시 다르지 않아서, 거의 대부분이 비관적 전망을 쏟아내고 있을 때, 홀연히 'L' 의 글이 올라왔다.

  하이버리의 전망과 달리 4위 탈환은 시간문제이며, 벵거의 팀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고. 그 글은 뛰어난 논리와 기존의 토론에서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시각으로 축구판을 해석하는 참신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소 권위적인 문체와 더불어 지나치게 낙관적인 내용 때문에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그런 비판 중에는 논리와 예의를 갖춘 글 혹은 댓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별 근거도 없이 그냥 '말도 안된다'는 식의 몇줄 안되는 댓글이었다.

  그런 댓글에 대해 다시 글을 올려 주장을 피력하고 또 까이는 과정이 몇 번이고 되풀이된 후 한두달의 시간이 흘렀다. 아스톤 빌라는 그 맹렬함을 잃고 게눈 감추듯 상위 랭크에서 사라졌고, 아스날은 고유의 조직력을 다소 회복하며 4위에 쉽게 입성했다. 'L'의 예상ㅡ혹자들은 '예지'라고 치부할만한 낙관적 전망대로 리그는 진행되었고, 그 이후로 'L'의 글을 즐겨 보는 애독자들이 생겨났음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3


  그를 까는 게 국민 스포츠이던 시절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새똥을 맞아도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을 농담조로 중얼거리던 때였다. 언론에서 까니까, 나도 까자는 심보는 아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전부 그의 잘못으로 전가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부동산은 부동산대로 못 잡으면서, 한미 FTA에, 대미정책, 이라크 파병 ㅡ 연달아 터지는 굵직한 정책들은 그에게 거는 기대만 못했다. 기대만 못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배신'급이었다. 그런 까닭으로 여기서도 맞고, 저기서도 맞았다.

  이후에 벌어진 대선의 포인트는 '누가, 누가 더 잘 까나' 였다. 기존 여당 마저도 그를 버려야 이길 수 있었다. 그와 '친'하다고 꼬리표가 붙은 정치인의 생명은 거의 끝난듯이 보였다. (그의 죽음 이후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되는 '유시민 바람'과는 정 반대의 분위기였다.)


... 그리고 그저께, 그가 세상을 떠났다. 난 소식을 듣고, 멍을 때렸다.


  멍.


4


  요 몇일, '그의 죽음'을 어떤 맥락에다 집어넣을지에 대한 논의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맥락이 하도 많아서 어떤 맥락에 나의 생각을 맞춰야 할지 감이 오질 않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언론과 인터넷, 주위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면,

  1) 이 시국에서 꼭 스스로 죽음을 택했어야 하는가 의문을 던지는 맥락과
  2)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무언의 강요(물론 직접 말한 '놈'도 있다)를 한 정부를 비판하는 맥락과

  이어지는 논의에서,

  4) 그의 죽음을 기리며 반MB를 내세우는 맥락도 있고, (나아가 탄핵을 주장하는 맥락까지도...)
  5)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 하는, '순수'한 맥락도 있고,
  6) 4번, 5번과는 조금 다르게,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위와 같은 '물리력'을 동원하는 방법이 아닌) 그가 중요시 했던 '원칙'과 '제도'를 바탕으로 저항해야 한다는 맥락도 있고,
  7) 그의 죽음에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맥락도 있고,

  다른 측면에서,

  8) 이미 이승과 작별한 그의 잘잘못을 계속해서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맥락과
  9) 그를 떳떳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맥락과

  다 덮어두고,

  10) 고인을 두고 쓸 데 없는 말 하지 말라며 모든 논의를 잠정적으로 부정하는 맥락이 존재한다.


  갈피가 안 잡힌다.


5


  저런 이야기들은 잘 모르겠고, 내가 그의 죽음을 맞이하는 맥락은 나의 '세 치 혀'와 관련이 있다. 내가 그를 '까'곤 했을 때, 난 그럴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었던가. 그의 정책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공과를 정확히 구분하여 비난이 아닌 비판 의식을 견지하고, 비판한 정책의 적절한 대안에 대해 고민하고, 또 그 대안을 위해 조금이라도 실천하려고 노력했던가. 당시의 나는 나름대로 열심이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만 남는다.

  그에 대한 비판과 비판자들을 전부 깔아뭉개고자 함은 아니다. 그에 대한 비판은 전부 잘못되지는 않았고, 어떤 국면에서 그는 비판받을 만 했다. 문제는 과연 내가 '비판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그보다 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보다 더 노력했는가, 앞으로 그보다 더 적게, 아니 아예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 아니... 그보다 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난 대답할 수 없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된 나의 가벼움에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6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부모는 부모다워야 하듯, 비판에도 '자격'이 필요하다. 남 흉보기는 쉽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어떤 주장를 제시했을 때,

  1) 그 주장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거치지 않았다면,
  2) 하나의 주장을 잉태하기 위한 상대방의 고민과 노력에 걸맞는 고민과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면,
  3) (모든 비판에 대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대안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하지도 않고 '비판을 위한 비판'을 행한다면,

  그러한 비판은 '비판답지' 못하다.

  물론 이런 논리가 일반론적으로 모든 주장과 비판에 통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진중권 말하듯) 이미 보편적인 원칙과 상식에서 벗어나 있는 MB나 조중동에 대해서라면, 그들을 비판하기 위해 저러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하지만 '그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만나는 사람들, 주위의 친구들을 대할 때에는 적어도 저러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지 않을까. 주장의 진정성에 상응하는 진정성을 갖추는 게 비판의 자격일 것이다. 


7


  최근에 진중권과 전원책에서 엿보이는 '때아닌 우정(?)'도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자격이 있는 비판자'라는 인정을 했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원책에 대해 "한국 보수가 대부분 '이권' 보수다. 논리가 없이 개인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데 전원책 변호사는 이념 보수다. 김용갑 전 의원도, 내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진정성 있는 보수다. 그분들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감동이 있다." 라고 대답했다.)

  최근 블로고스피어에서 종종 발견되는 '쿨게이 논쟁'(김우재 님의 <쿨게이는 부족해> 참조)도 '비판의 자격'이라는 문제제기에서 자유롭지 않은 듯 하다. KNauer 님의 정의에 의하면, 쿨게이는 '(필요에 따라 중립을 자처하며)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비판만을 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춘 키보드워리어'를 뜻하는 말이다. (다소 공격적인 정의라는 느낌도 받지만, 사실 쿨게이들은 자신들이 쿨게이임을 긍정한다.) 이 사람들에게 정말로 '비판의 자격'이라는 게 있을까?

  시계를 되돌려 몇 년 전의 나를 바라보면, 나는 '쿨게이'라는 딱지에서 자유로울까? '중립'이라는 말을 상당히 싫어하고 손가락으로 깐 적은 없어서 완벽히 대응되지는 않겠지만, 나도 쿨게이 마냥 비판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8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을 비판했던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힘들었던 생의 저 너머에서라도 편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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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고나수 2009.05.25 20:36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그놈의 중립의 사슬. 그 사슬 안에 국민성이나 우민화따위를 운운하면서 시크한듯 꼴에 객관적인 잣대랍시고 들이대고, 한발치 물러나서 관망하듯 ㅉㅉ 거리는 모양새에 정말 소름이 다 끼칩니다. 쿨게인지 뭔지 얼어죽을.

    • BlogIcon tilt shift 2009.05.26 00:54 신고 address edit & delete

      그죠. 중립, 객관성, 균형 - 참 지긋지긋하기도 합니다. 그치만, 진짜 쿨게이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논리가 있을 거에요. 그래서 더 짱나는 애들임.

      고앙님의 격앙(?)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