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블러디 선데이」를 통해본 6.29 유혈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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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공수부대의 총격에 거리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 시민들이 하나둘씩 고꾸라진다. 아일랜드 시민들은 공포와 충격에 휩싸여서 여기저기로 도망가지만 영국군이 쏜 총알은 그들을 차례차례 명중시킨다. '설마 맨몸으로 나가는데 쏘겠어' 하는 생각도 잠시, 어느새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학살이 끝난 후의 거리는 피와 시체 뿐이었다.

    영화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비무장 시위를 벌이던 아일랜드 데리 시민 열 세명이 영국군 총에 맞아 사망한 역사를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는 독립을 이루어냈지만, 북아일랜드 지역은 여전히 영국의 통치 하에 있었다. 여기에 아일랜드가 반발하며 신교도-구교도의 분쟁도 함께 발생하여 결국 '피의 일요일'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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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사건을 담담히 바라보는 시점이 인상적이다. 영화 내내 사건의 동요에 따라 흔들리는 16mm 핸드헬드 카메라는 사건의 사실성과 긴박함을 더해준다. 또한 사건에 가치를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데에 영화는 집중한다. 즉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고 영화는 사건의 흐름만 따라갈 뿐이다.

    거리 시위를 하던 중 '첫 총성'이 울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카메라는 등장인물의 시선을 따라갈 뿐이기 때문에 누가, 어디서, 왜 처음 총을 격발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단지 총성이 들릴 뿐이다. 그 결과는 위에서 묘사한 것처럼 잔혹했다. 첫 총성에 놀란 영국군은 마구잡이로 총을 쏘아대고 비무장 시민들은 아무런 저지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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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여기서 영국군은 왜 동요하여 총을 쏘았을까? 첫 격발이 영국군의 것일 수도 있지만, 시위대의 것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에 시위를 준비하면서 무장투쟁파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의 음모를 암시하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기회를 타 총을 나눠주려는 의도를 은근히 내비치고 유혈 충돌을 내심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또한 IRA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무력집단이기 때문에 출동 대기하는 영국군들은 일말의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IRA가 총격전을 벌이는 걸까? 아니면 발포 명령이 떨어졌나?" 그 자리에 있는 군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었고,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 사건이 종결된 후에 총을 든 시위대를 보지도 못했다며 패닉 상태에 빠져있던 한 군인은 시위대가 먼저 총격을 시작했다고 당연한 듯 말한다.

    이 정도까지 영화를 보고 나면 이제 관객은 의문에 빠진다. "왜 영화는 누가 처음 총격을 시작했는지 가르쳐주지 않을까?" 당황한 일개 군인의 실수일 수도 있고, 유혈 투쟁을 기대한 IRA의 음모일 수도 있다. 왜 영화는 그 판단의 단서조차 제공해주지 않고, 단지 '일발의 총성만 들려줄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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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에 '누가 먼저 총을 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나약한 개인과 그를 억압하는 사회 구조'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그 특수한 상황 속에서라면 누구나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물론 그 선택에 있어서 개인의 편차는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이성적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IRA의 음모였다 할지라도,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는 IRA가 무고한 시민을 희생시켜 가면서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싶었겠는가? '나약한 개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첫 총성'의 주인공을 보여주지 않는다.

    즉, 유혈 사태의 당사자에게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유혈 사태를 불러일으킨 구조적 모순'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왜 아일랜드 시민은 시위를 나와야만 했고, 왜 영국 군인들은 방아쇠를 당겨야 했는가. 시민과 군인의 선과 악을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다. 이 유혈사태의 구조적, 근본적 원인은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몰수하고 반(反)구교도 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아일랜드의 여론에는 콧방귀도 끼지 않았던 영국의 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나약한 개인들을 앞세워 비극을 조장한 영국 정부에 이 유혈 사태의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것이다.


    촛불 집회로 눈을 돌려보자. 6월 29일, 우리는 '피의 일요일'을 직접 목격했다. 수많은 시민이 전경의 무차별 진압에 희생되었다. 그 반대급부로 전,의경 측에서도 많은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리고 이 유혈 충돌 이후에 벌어지는 논의의 대부분은 '누잘못했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 집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시위대가 먼저 폭력적으로 나오니 거기에 맞게 강경 진압을 한 게 아니냐'는 식이고, 그에 대하여 촛불 집회 측은 '전,의경이 먼저 강경진압을 하니까 방어적으로 폭력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누가 먼저 때렸나. 누가 먼저 폭력을 사용하였나. 그것을 제대로 판단할 논리적 근거가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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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영화 <블러디 선데이>로부터 이 유혈 충돌을 보는 관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전, 의경을 욕하는 누구도 자신이 전, 의경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지금 순간이야 자신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시위대의 입장은 더 안타깝다. 맨몸으로 전, 의경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무자비한 폭력이 쏟아지는데, 어떻게 무조건 '비폭력'만 외치고 있나. 머리는 '비폭력'을 외쳐도 어느새 몸은 정당방위를 위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주위에서 자기 부모님, 자기 자식, 자기 친구 같은 사람들이 맞아서 피가 흐르는데, 어떻게 진정하고 비폭력을 외치겠는가.

    전,의경도 시민도 '나약한 개인'일 뿐이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나약한 개인을 꼭 이렇게 잔혹한 현장으로 내밀어야 하는가. 이 유혈 사태의 근본적 모순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태도'에 있다. 국민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한 지 불과 닷새째만에 이명박 정부는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루가 갈수록 가관이다. 시민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것도, 전,의경의 심신에 고통을 가하며 가혹한 진압을 명령하는 것도 바로 '이명박 정부'이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시민들이 변질되었는지 말았는지를 논할 때가 아니라 이런 사태의 구조적 원인을 제공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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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협상도 하고 했으니 이제 그만 하자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 생각을 하는 비율만큼 촛불의 수도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많은 수의 촛불은 아직도 추가 협상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수도 많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먹을 거리'에 대한 시민의 권리 요구는 결코 '민주화'에 뒤지지 않는다. 독재 정권를 타도하는 것 만큼 개개인의 건강권, 행복 추구권과 같은 기본권을 수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 우리는 안전하지 못한 먹을 거리가 수입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가?

    꼭 '광우병 문제'가 아니더라도, 국민을 좌빨, 친북단체, 폭도 등등으로 몰아가며 무자비한 진압을 강행하는 이명박 정부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안전한 음식 좀 먹자고 시청으로 나오는 사람들보다 이명박이 더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 영화 <블러디 선데이>의 결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평화 거리 시위를 하던 아일랜드 청년들은 유혈 사태 이후에 무장투쟁파인 IRA로 달려가 총자루를 굳게 쥔다. 약세였던 IRA는 이 사건 이후에 급성장세를 보인다.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아직도 유효하다. 피는 피를 부른다. '비폭력'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그 어느 쪽도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구조'를 만들어 가는 데에 이명박 정부가 동참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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